정기환 논설위원

20세기적 풍경이다. 새벽같이 일어난 아버지는 라디오를 볼륨껏 켠다. 한 방에서 자던 예닐곱의 형제들은 어쩔 수 없어 부시시 일어난다. 온 방을 차지한 요와 이불들을 개고 치우느라 끙끙거린다. 형은 방과 마당을 쓸고 아우들은 걸레질을 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이제는 '(이불을) 개다'라는 말조차 듣기 어렵게 됐다.

▶신세대 병사들은 왜 군대생활을 심하게 어려워할까. 좀 색다른 분석을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자기만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큰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내 방'을 가질 수 있었던 세대들이다. '내 방'을 갖게 된 세대에게 정리정돈이 '큰 일'이 된 것도 아이러니다. 온 방에 옷가지며 책, 잡동사니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널부러져 있다. 방 문을 열면 한걸음 내디딜 곳조차 없다. 어쩌다 딸내미 방을 들여다 본 어떤 아버지가 소리쳤다고 한다. "잘 보존해라. 우리 집의 관광자원이다."

▶외국도 다르지 않는가 보다. 일본에서는 '정리의 여왕'까지 등장했다. 여왕의 지론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이다. 올해는 미국에까지 진출해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했다. 넷플릭스에 '곤도 마리에-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가 방영되자 1주일 만에 기부물품이 40% 늘었다고 한다.

▶경기도가 '워킹맘 주거 공간 개선 지원'이라는 신종 복지 아이템을 선보였다. 쉽게 말해 정리수납 1급 전문가들을 중위권 소득 이하의 가정에 파견해 어질러진 집을 치워주는 서비스다. 취지는 워킹맘들의 일과 가정 양립 지원이다. 정리수납 전문가들에 대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비워야 할 물건과 공간을 선별해 제 자리를 찾아 주는 자상한 복지다. 그러나 호응도는 그리 큰 것 같지 않다. 성남·의정부 등 4곳에서 시행에 나섰지만 신청 가정이 한참 미달이다. 지난 달 13일까지이던 신청 마감을 오늘까지로 연장해 놓았다고 한다. 자격 요건도 제한돼 있지만 심리적 장벽도 없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누가 선뜻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타인에게 활짝 열어주겠는가.

▶이것 하나만 봐도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과연 복지 아이템의 개척자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복지 아이디어만큼은 전국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앞서갔다. 지금도 청년배당, 생애최초 청년 국민연금 지원 등으로 또 한 번 앞서가고 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모두들 쫓아간다. 누가 알겠는가. 정리수납 복지도 곧 전국으로 확산될지도. 과거 한때 허경영 대선후보의 '출산 3000만원, 노인당 월 70만원'공약은 개그 소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이 돼 있지 않은가.

/정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