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되었다. 작년 6000억달러를 넘어섰던 우리나라의 상품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우리 상품수출이 전년 대비 1.2% 감소한 이후 올해 1월에는 5.8%, 2월에는 11.1%, 3월에는 8.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작년 호황을 기록하였던 반도체 경기의 하락과 대중국 수출 감소에 따른 것으로서 특정 제품,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무역구조의 취약성을 대변하는 자료다.

상품무역에 있어서 무역상대국의 다변화와 교역제품의 다양화가 시급한 만큼 디지털 무역(digital trade)에 대한 준비 역시 매우 긴요한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전은 우리나라 산업과 통상환경에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디지털 무역은 크게 두 개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교역대상이 디지털 상품인 경우이다. 예를 들어 서적이나 음원, 소프트웨어 등 과거 인쇄물이나 CD 등의 상품에 담겨 있던 지적 콘텐츠가 디지털화(digitalization)되어 교역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서비스의 영역에 있던 상품들도 디지털화되어 국경을 오간다. 예를 들어 교육, 법률, 의료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촬영된 MRI 영상이 인도의 방사선 전문의에 의해 해독되는 형태의 의료서비스의 디지털화는 이미 10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무역 프로세스의 디지털 전환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상품이라도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국경 간 매매와 결제가 이루어진다면 이 역시 디지털 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무역은 교역 상대방에 대한 탐색비용과 무역관련 거래비용을 줄여줌으로써 그동안 국제거래에 참여하지 못하였던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개발도상국에게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국경 간 교역이 어렵다고 여겨졌던 의료나 교육 등 서비스가 무역의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기회요인은 세계 무역규모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8년 세계무역기구(WT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 및 국경 간 전자상거래 규모는 2016년 총 27.7조 달러로서 2012년의 19.3조 달러에 비해 큰 증가세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디지털 무역의 현주소는 아직 초라하기만 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5년 세계 국경 간 전자상거래는 3000억 달러 규모이며 이 중 중국이 739억 달러를 차지하는 데 비해 한국은 27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McKinsey)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은 상품 교역에 있어서는 세계 8위를 기록했으나 디지털 교역은 44위에 그쳐 상품무역에 치우친 불균형적 무역구조를 노출하였다.
최근 스위스 소재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였다. 디지털 관련 지식, 기술, 미래준비정도 등 3가지 항목에 의해 평가된 국가별 디지털 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 세계 19위에서 2018년 14위로 5계단 상승하였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미국, 싱가포르,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이 차지했으며 일본은 22위, 중국은 30위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2000만 명 이상 국가 중 세계 5위로 평가되어 IT 강국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경쟁력이 유독 국제무역의 범주에서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많은 국가들이 디지털 무역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적 문제 외에도 국경 간 정보 이동의 자유화, 과세, 개인정보보호, 소비자보호, 컴퓨팅 설비 및 서버의 물리적 위치 등 규범적 난제가 존재한다. 국가들 간 이익 셈법이 다르지만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과 규모는 데이터 혁명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협상에서 디지털 거래분야 규제문제가 막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보도는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세계무역기구의 디지털 통상 관련 국제규범 제정 논의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 6위의 상품수출 대국이자 IT 강국인 우리나라에게 디지털 무역은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