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인천녹색연합초록교사


두꺼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는 일은 한강에 돌 던지기 만큼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두꺼비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쉰 줄이 넘은 사람 중에도 살아있는 두꺼비를 본 적이 없는 자가 태반이니 그것 하나 사라진 들 별일은 없을 듯하다.
이런 안일한 생각들이 지구 생물종의 멸종을 부추겨 이미 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학계의 반갑지 않은 보고가 들린 지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더구나 이번 대멸종의 원인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지혜를 자랑하는 인간이라는 것도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설 자리는 어디쯤일까.

바쁜 도시인들에게 봄은 달력의 숫자로 오는 경우가 허다하나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3월 겨울나무들 사이에 이미 봄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노란 생강꽃이 다복하니 검은 나목들 사이에 얼굴을 내밀었다. 생강꽃을 핑계로 가까운 곳으로 떠날 계획을 잡았다. 가로등이 없는 밤길을 발끝의 감각을 모아 걷기 시작했다.
논두렁이 있는 어디선가 '꾸르르르' 저음의 드릴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입구의 가로등 아래에 서서야 소리의 정체가 확인됐다. 15㎝가 넘는 두꺼비가 느릿한 걸음으로 아스팔트를 횡단하고 있다. 뒤이어 또 한 마리가 엉금엉금 물이 차 있는 도로 옆의 논두렁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아하, 두꺼비의 짝짓기 시기였구나! 이곳을 생각 없이 자동차로 달렸다니'에 생각이 미쳤다. 아스팔트 여기저기를 둘러보자 이미 두꺼비포가 되어버린 주검들이 눈에 띈다.
천적을 피해 이른 봄에 산속에서 물가로, 낮이 아닌 밤에 그것도 엉금한 걸음걸이는 두꺼비가 지구상에 나타난 그때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이어져 온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자동차는 호랑이가 사라진 세상에 가장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그것도 포유종만이 아닌 종을 망라하는 가장 난폭한 포식자이다. 자동차의 바퀴는 거저리 같은 곤충류나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개구리, 두꺼비, 하늘을 나는 멧비둘기나 수리부엉이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이왕에 도시의 눈 코 뜰 새 없는 속도에 지쳐 그것을 놓아 버리기로 작정하고 시골로 왔다면 철저히 느려져야 할 것이다. 시골은 도시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산란철에 굳이 자동차로 농로를 달려야 한다면 최대한 속도를 늦추자. 그것이 인간이 미물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3월의 봄에는 생강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부여받은 생의 의무를 다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두꺼비의 느릿한 걸음에서도 생명의 꽃이 핀다.
봄에는 '봄'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보자. 인간이 직립보행으로 얻은 내려다봄의 시야는 인간 이외의 것들을 장악하고 발 아래 복속시키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확보된 시야만큼 약한 것들을 살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