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림 없는 자연·인간적인 감성 담다
▲ 김기욱 지음이화문화출판사144쪽, 1만원
김기욱 시인의 네 번째 시집...3부 구성·80여편 수록


존재 태초부터 지금 오늘에까지 거기에 그렇게 변함없이 있어준 게 좋다 또 앞으로 영원히 그러하리라/
사계절 이 땅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계(四季)를 밟으며 철이 들어서 좋다/
포용 군상 욕심만 넘치지 않으면 대상이 무엇이든 허용 내주는 게 있어서 좋다/
무대 숲속의 교향곡 연주회 수채화 전시회 무전 객석 전시장이 있어 좋다/
태곳적부터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이 지키고 지켜가려 혼신을 다해 열정을 불태우는 숲 그 영혼과 열정이 경이롭기만 하다 침묵 속에 불타는 숲! ('서시-침묵 속에 불타는 숲!' 전문)

김기욱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나왔다. <여운이 기인 메아리가 귀를 노크하다>, <서리꽃 한 바지게 선물받은 한라산 나목>, <가마우지의 한나절>에 이어 이번 시집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시인의 아포리즘은 자연과 가족을 바라보는 '겸손'과 '사랑'이다.

제1부 문학산으로 들어간 국어책, 제2부 지민이 졸업했어요, 제3부 침묵 속에 불타는 숲 등 80여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의 소재는 주로 풀벌레, 숲, 산, 꽃, 바람, 독도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아내, 손주, 며느리, 친구, 골목에서 만난 어린이, 지하철에서 만난 아가씨 등 가족과 이웃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김기욱 시인의 시어들은 내면적 성향과 가치의식을 '낮고 따뜻한 시선'을 통해 엿보게 한다. 그런 사유의 흐름은 '낙엽의 군무에 넋을 홀랑 빼앗기고', '산은 세월을 먹고 자라고 나는 세월을 먹고 조락의 길을 걷고', '묵은 된장맛 내는 친구들과 덤으로 10년을 살고', '겨울 술이 따뜻한 건 서리꽃 한없는 숲 사랑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침묵 속에 불타는 숲은 실한 종자로 거듭나려 정신이 없다'며 온화한 터치와 정감어린 은유들로 나타내고 있다.

'무봉(無縫)'이란 아호에 걸맞게 50년 묵은 된장 같은 친구로부터 '쉽게 쓰면서도 무봉의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꾸밈없이, 토속과 전통을 느끼게 하는 구수한 시어 동시 같은 친근감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다.

김기욱 시인은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마음으로 자주 산행에 오르는데 두발로 걸으며 얻는 '철든다'는 말처럼 거슬림 없는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며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기계적이고 물리적으로 얽매이거나 억압적인 현대인들의 특성을 벗어나 부모세대의 푸근하고 인간적인 감성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인천 송현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한 김기욱 시인은 2012년 제84회 <창조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뒤 지난해 제22회 <창조문학> 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외에 여행기 <여행이 속삭여주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산행기 <산에 홀려 산에 오르니> 등을 출간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