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역사 원정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 - 프롤로그] 상하이에 피어오른 독립의 등불 마주하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 - 프롤로그] 상하이에 피어오른 독립의 등불 마주하다
  • 이주영
  • 승인 2019.0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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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간 27년 임정 역사 뒤쫓으며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 활동 되새겨
김신부路서 '민주공화국' 헌법 제정
상하이 곳곳 전전하다 보경리 정착
6년간 머무른 청사 유일하게 보존
▲ 상하이 마당로 보경리4호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청소년 역사 원정대' 참가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상하이=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상하이 외국인 공동묘지인 송경령능원(옛 만국공묘)에서 '청소년 역사 원정대' 참가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박은식 선생의 묘비석을 살펴보고 있다. /상하이=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대지는 거추장스럽던 겨울옷을 거뒀다. 새것을 담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 땅은 춥고도 험한 겨울 한복판에 서 있다. 한 순간 우릴 집어삼킨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 얼마저 빼앗으려 두 눈을 부릅뜨고 2000만 겨레를 옥좼다.


'포기'할 민족이 아니다. 우린 반만년 역사 속에 각종 외침을 견뎠다. 그렇기에 민족 최고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은 거셌다. 1919년 3월1일 전국민이 태극기를 품고 치켜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민중'이 분연히 일어났고, 그 힘은 황해를 건너 중국 땅에 '독립'이란 씨앗을 심었다.

해방된 조국, 아직 반쪽짜리지만 세계가 우릴 주목하고 있다. 그 뿌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100년 전 고단한 우리 민족에 등불이 되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은 한국인이라면 당연한 행위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는 인천일보와 길위의꿈 여행인문학 도서관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인천·서울지역 13명의 학생이 동참한 이번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4월6일 이른 아침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4월11일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단했던 3만리에 동참했다. 때론 힘들고 지쳤지만, 독립운동가들의 영롱했던 의지를 함께 하겠다는 각오만은 남달랐다.

그렇게 5박6일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를 따른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가슴과 가슴에 나라의 소중함을 새겼다. 다시는 남의 손에 나라를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칠 수 있는 자유를.

▲우린, 왜 임정길에 올랐나
나라 곳곳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1919년 임정 수립 과정과 임정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다시금 조망하고 있다. 다시는 끔찍했던 35년 일제 치하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을 거부하며, 1948년 건국됐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른다. 당시의 외침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린다. 왜, 일제 치하 35년을 인정해야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린 아니다.

비록 나라를 뺏겼어도 되칫기 위한 몸부림에 치열했다. 임정이 탄생하고 둥지를 틀었던 곳, 그리고 환국에 앞서 타국에서 겪었던 시련이 고스란히 숨쉬는 그곳은 생생히 중국 곳곳에 새겨 있다.

임정의 활동과 독립의 열망, 그 한복판에 인천일보가 함께했다.

해방 후 자유 언론의 열망이 고스란히 잉태한 '대중일보'의 정신을 계승하고, 인천·경기 민중의 작은 목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사명에서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여정 3만리를 찾아 나섰다. 길위의 꿈 여행인문학 도서관도 청소년 역사 원정대 구성에 동참했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의 시작은 임정의 탄생 배경과 임정이 이동할 수밖에 없던 역사적 이유를 배우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남동구의 '길위의 꿈'에서 신춘호 박사를 통해 관련 사실을 배웠다. 신 박사는 20여년간 중국 독립유적지를 직접 돌아보며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상하이에서 항저우, 난징, 창사, 광저우, 충칭에 이르는 임시정부 27년의 역사를 전달했다. 신 박사는 현재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회장으로 임시정부 루트를 직접 발로 찾아가 정리한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특강에 이어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3월30일 김구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인천 중구 옛 감리서 터와 자유공원 일대를 둘러봤다.

드디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찾는 청소년 역사 원정대가 첫발을 내딛었다. 그들 앞에 어떠한 역사적 사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임정 역사탐방이 시작됐다.

"왜 그러했으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으며,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 때문에 그리 싸웠는가. 그들이 꿈꾸던 꿈은 무엇일까. 그 꿈의 일부는 지금 실현되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은 우리에게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시도하는 대화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의 머리말.

▲상하이, 바다만 건너면 한반도인 것을
맑다. 며칠 째 비만 주룩 내렸다는 상하이. 중국 대표 도시답게 상하이 거리 곳곳은 낯설 만큼 새로움에 익숙한 모습이다. 도시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황푸강의 강바람은 고단한 도시인의 삶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높다랗게 선 동방명주와 마천루, 근대화를 겪으며 생채기처럼 강가에 늘어선 근대식 서양 건물이 인근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내려다 보는 듯하다.

100년 전을 그려본다. 황푸강 어디쯤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던 임정 요인을 실은 배가 정박했을까. 백범 김구 선생이 고뇌에 차 하염없이 걸었을 강변은 이쯤일까.

상하이 임시정부는 김신부로에서 '법통'을 세웠다. 이 곳에서 임정 의정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으로 시작된 임정 헌법을 낳았다. 임정은 이어 장안로·고잉의로·하비로·포석로 등으로 청사를 옮겼고, 1926년 마당로 보경리 4호에 닿았다. 상하이 청사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곳은 요즘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당로 임정 청사는 1926년 3월부터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할 때까지 6년간 사용됐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2019년 4월6일 토요일 이곳에 도착했다. 며칠째 비만 쏟아진 상하이에 모처럼 햇빛으로 활기를 찾았다.

"지금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인과 신, 김구의 두 아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들 또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니,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나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을 알 곳이 없기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김구는 이 건물 2층에서 1년여에 걸쳐 <백범일지> 상권을 완성했다. 대한민국 11년(1929년) 5월3일 상해 법(법국, 프랑스) 조계 마랑로(현 마당로) 보경리 4호 임시정부 청사에서다.

마당로 임정 청사는 신식건물과 고풍스런 붉은 벽돌 주택가에 자리했다. 3개 층을 쓴 임정 청사는 1층은 응접실과 부엌, 2층은 집무실, 3층은 침실로 1993년 한·중 두 나라의 복구공사로 복원됐다. 옆 건물은 2015년 보훈처의 지원을 받은 독립기념관이 전시관으로 꾸몄다. 입구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大韓民國 臨時政府 舊址)'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임정 여로 곳곳에서 만나게 될 이 표지를 처음 접할 때 '감동'에 휩싸였다. 또 1945년 환국에 앞서 임정 요인들이 쓴 '새살림 차리어 고로 잘살세'를 보며 발길을 멈췄다. 그러나 중국에 세워질 수밖에 없는 임정 청사의 운명이 지금 이 순간도 이어가는 사실에 가슴이 애린다. 상하이시가 관리하는 임정 청사는 우리 손길이 매만져질 틈을 안준다.

마당로 임정 청사 옆은 신톈디(新天地)라는 상업지구다. 이곳에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회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임정'과 같이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태가 된 중국공산당이 1921년 탄생했다.

신톈디는 청소년 역사 원정대에게 잠시나마 쉼표가 돼 줬다. 눈이 휘둥그레 외국 상표가 즐비하고, 심지어 미국의 햄버거 가게가 있기에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의 남예진(인화여고·3년)양은 "임정 원정길을 동참하는 것에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막상 상하이 청사를 둘러보며 도전을 하게 된 것에 뿌듯함을 느끼게 됐다"며 "책에서만 봤던 내용을 실제로 보는 감동과 함께 한국에 돌아가 더욱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열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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