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어느 술자리서 나온 얘기. 요즘 뉴스를 보다가 부부간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단다. 대개 아내가 먼저 시작한다. "당신은 어디 청문회 비슷한 데 가서 '배우자 탓' 할 만한 거 좀 없수." 남편은 "씰 데 없는 소리"라며 넘어가려 한다. 이쯤에서 끝내지 않고 아내는 더 나간다. "그렇게 정보력도 없나" "에이 등신.". 이쯤 되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오래 전 거름지고 장에 가는 격으로 주식을 해본 적이 있다. 갈수록 원금을 까먹는 것도 그렇지만 하루 종일 머리가 복잡한 게 문제였다. '수업료 바쳤다' 생각하고 빠져나오니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 한 헌법재판관 후보가 판사로 근무하면서 1300여회나 주식거래를 했다고 한다. 거의 장이 열리는 날마다 사고팔고를 했다는 얘기다. 거래소 개장 시간과 일과시간은 겹친다. 판사실에서 붉고 푸른 숫자들이 명멸하는 주식거래 모니터에 푹 빠진 모습이 그려진다. 재판 중에도 주가의 오르내림이 못내 궁금했을 것 같다. ▶수익률도 가히 타짜급이다. 종목 별로 287.2%, 47.9%, 47.2%, 43.6% 수준이다. 박지원 의원이 언급한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도 못따라 갈 수익률이다. 어떤 종목은 매수 뒤 2주일여 만에 52주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판은 뒷전이고 판사는 부업이었냐'는 지적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자 없는 인사청문회 후보가 어디 있겠는가. 논란의 압권은 꼭 '해명'에서 터져 나온다. 이 헌법재판관 후보는 "남편이 다 한 일"이라고 했다. 명의만 빌려줬다는 것이다. 순간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한번 보지도 못한 그 남편의 얼굴이 그려진다. 아내가 얼마나 출세가도를 달릴 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듯 주식투자에 빠진 남편. 이 때문에 잊을만 해져 가던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다시 회자됐다. 그때는 "아내가 다했다"고 했다. 그때도 누군지도 모르는 그 아내가 떠올려졌다. 평생을 교단에서 보냈지만 어쩌다 남편의 출세길을 막아버린 모습을 한 그 아내. ▶가족, 특히 부부간의 '네 탓'은 한국인의 심성에는 많이 낯설다. 설사 사실이라 해도 그렇다. 인간적 의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이런 식으로 해명할 일은 아니다. 이번 강원산불 재난방송 실패에 대한 KBS의 해명도 불을 키웠다. "산불 재난방송이 15년 만에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 KBS를 틀어보니 요즘 뉴스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됐다. 연예인·재벌3세들의 마약 시리즈, 그리고 실력자들의 주식·건물 투자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