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어머니1-이성복  
[시, 인천을 읽다] 어머니1-이성복  
  • 인천일보
  • 승인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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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더미에서 자기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와 퍼질러 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으잖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수국(水菊)꽃 더미로 피어오르는 오월. 나는 스무 해 전 고향 뒷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름 너머로 차올라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 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 위에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에,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이 세상에 자식을 두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가슴 속에 대못 하나씩 깊이 간직하고 사는 일이다. 아무리 돌아봐도 어느 한 곳 따뜻하게 등을 기댈 곳 없이 가난했던 시절. 추억컨대 내가 살던 마을 앞으로는 넓은 신작로가 있었다. 여름이거나 가을 구분 없이 장날 이른 새벽이면 손수 키우고 거둔 곡식을 한 보따리씩 머리에 이고 신작로가 가득하도록 하얗게 오르내리곤 했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한 푼의 돈이라도 아끼려고 끼니도 거른 채 이고 간 곡식을 내다 팔던 우리들의 어머니. 평소에는 곤궁함으로 쉬 한 잔의 탁배기도 마음 놓고 자시지 못하던 그 마음에 장날은 조금 술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취하셔서 집나간 자식이나 먼저 간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타박타박 어두운 신작로에서 흐느끼며 부르던 그들의 슬픈 노래는 지금도 내 가슴속의 에레미아로 남아 있다.
당신의 가슴에 박힌 못도 뽑지 못한 채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에,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그 시절,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가슴만 먹먹하다.

/주병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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