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깊은 주름만 남겼다
▲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만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그는 베일에 쌓인 '진실'을 끝까지 밝혀 다시는 이런 살인적 사고가 없어야 함을 강조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5년 지났지만 꽁꽁 싸맨 진실들
3년 전 의문의 사무실 화재 발생
'의혹 밝혀야 한다' 생각 더 키워

평생 바다와 함께한 조선 전문가
세월호 항로·닻 … 모두 이해 안돼
다이빙벨 제때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구조 기회는 아직도 상처

'이런 참사 이젠 없다' 란 법 없어
규명 없이 반복땐 피해는 국민이






지천이 꽃놀이로 들떴던 그날, 안개가 어스름한 아침 바다. 청천벽력같은 세월호 좌초 소식에 온 국민은 발을 굴렀다. 나라를 믿고, 위정자가 뱉어내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잠시뿐, 온통 거짓말들로 그날의 사고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춰져 있다.

2014년 4월16일, "잊지않겠습니다"를 외치고 가슴에 새겼지만, 어느순간 질끈 감고 싶은 트라우마가 된 참사. 이종인(67)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그날을 놓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베일에 쌓인 '진실'을 쫓고 있다. 왜,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이런 살인적 사고가 반복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낡은 모자에 '노란리본'이 선명하다. 조립식 사무실 벽 한켠에 걸린 달력을 통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음력과 각종 기념일, 물대가 촘촘히 적힌 날들 사이에 유독 이날만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4월, 우린 꼿꼿이 서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됐지만 아직도 모든 게 뒤틀려 있다.

따뜻한 햇살과 훈훈한 봄 바람이 인천 연안부두를 감싼다. 그리고 인근 도로 한켠에 바다에 기대선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공터 귀퉁이에 다 타버린 잿더미가 가득하다.

"3년 전 불이나 사무실이 다 탔어." 석연찮은 화재였다.

2016년7월21일 오전 2시30분, 한여름 밤 군용 감시카메라 전선에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사는 미적였다.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종료됐다. 그 때 정치상황은 이 대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정권이 바뀌고 4만 명 넘은 국민이 국민청원에 참여해 '세월호 의인 이종인 대표의 알파잠수 화재사건 재조사를 요구합니다'에 동참했지만 그날 화재 역시 기억 속에 묻히고 있다.

불편한 오른손은 악수조차 버거워 보인다. 깊게 파인 주름은 세월호 참사 후 5년의 시련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이 대표는 거침없다. "누가 불냈는지 원인을 밝히고 싶지만 아직도 바뀐 건 없네."

군더더기 없는 삶처럼 사무실은 '갖출 것'만 있다. 잠수부를 상징하는 몇 가지만 눈에 띌 뿐이다. 5년이 흘렀어도 바뀐 것은 없다.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어"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감춰지고 왜곡된 진실을 캐내려는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이 대표는 천안함 사고 폭침 의혹에 이어 세월호 참사 다이빙벨 논란으로 전 정권의 눈엣가시였다. 언론들은 비수를 쏘아댔고, 주변은 등을 돌렸다.

그런 고초에도 이 대표는 당당하다. '왜' 편히 살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그 앞에 우문일 뿐이다.

이 대표는 "세월호는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살아온 그, 조선공학을 전공했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잠수 전문가인 만큼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감'이 있다.

아직 세월호 참사 원인은 가설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발표한 사고원인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한 자신만의 가설을 이야기한다.

직접 보지 않았지만 바다와 배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머릿속으로 세월호의 궤적을 그려본다.

이 대표는 "인천에서 출발해 군산쯤 도달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물체와 부딪혀 세월호 엔진룸 쪽에 구멍이 났다면 시간당 1t이상의 물이 찼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며 침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라며 "기관실까지 물에 찼고, 메인엔진까지 물이 찬 시점이 전라남도 병풍도 앞쪽 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때 되면 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거든. 당시 세월호의 마지막 이상한 항로가 설명되거든. 그래서 병풍도 앞에서 앵커(닻)을 떨어뜨려 묘박을 하려 했는데, 그게 또 이상해"라고 언급했다.

그는 세월호 앵커를 통해 침몰의 여러 원인을 살폈다. "분명 앵커를 내렸다면 적어도 2~3명의 선원이 했을 텐데, 누가 했는지 아무도 안나타나", "해경은 왜 선원부터 구조했을까", "세월호 앵커 무게를 줄이려 구멍을 내는 것도 이상해."

세월호 조사위원 선정에도 불만이다.

이 대표는 "배가 침몰하는 현장을 조사위원 중 누가 봤겠어. 하물며 교통사고 조사관도 수많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데 세월호의 조사 체계는 왜 현실화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번 정부는 국민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라고 뽑아준 것이다. 그걸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쉼 없이 쏘아 붙였다.

사무실 밖 바닷가 쪽으로 감압장치인 '다이빙벨'이 있다. 잠수부에게 '생명'과 같은 다이빙벨은 그에게 한 때 시련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다이빙벨.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우여곡절 끝에 다이빙벨을 끌고 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누구'는 그에게 구조할 기회를 주지 않고, '누구'는 기회마저 방해했다.

그는 "물에 빠져 체온이 떨어진 아이들이 구조돼 다이빙벨에서 몸을 녹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뱉었다. 그리고 이내 "세월호 침몰 때 제대로 된 지시·감독자만 있었어도 큰 화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물었다. 세월호 참사 5년 끝나지 않은 문제 해결책은 무엇이냐고.

그는 "여러 원인은 차근히 조사하면 된다"며 "그러나 애들은 살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를 높인다. 또 "왜 구조를 안했는지, 왜 못 들어가게 했는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피해자가 300명이면 책임자 1명당 1년씩 개인에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300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국민을 보호하라고 준 권력이고 정부조직인데, 철저히 원인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편의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며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되고, 사회정의가 없는 절망에 빠진 미래에 살게 된다"고 밝혔다.

/남창섭·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