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 영국의 웰링턴 장군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의 전투는 유럽의 역사, 특히 영국의 대외정책을 확신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00여만명의 병사를 확보하고 있던 연합군을 이끄는 웰링턴에 비해 절반가량인 50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있던 나폴레옹은 그날따라 활기도 없었고 참모들의 보좌도 여의치 못해 파리로 패주했고,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된 후 자결했다. ▶역사적으로 유럽 각국을 분할 유도하면서 섬나라를 방어해 왔던 영국은 유럽 대륙을 평정하고 영국을 향하던 나폴레옹의 야심을 워털루에서 꺾고 로마제국 이후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섬나라를 다시 한 번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1차대전에 이어서 2차대전 때도 히틀러가 끈질기게 영국 침공을 시도했음에도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국이 승전함으로써 영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 ▶28개의 회원국에 5억명에 달하는 인구와 유로라는 단일 화폐까지 도입한 EU(유럽연합)는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럽을 전쟁이 없고 상호협력하는 안전한 지역으로 만들어 보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로 EEC(유럽경제공동체)를 1957년 창설하면서 태동되었다. 이 같은 유럽 주도국들의 단결에 영국은 EFTA라는 또 다른 경제공동체를 스위스와 스칸디나비아 제국들과 결성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EEC 가입을 신청하게 된다. ▶영국의 EEC 가입 신청과 이를 끝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며 저지했던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는 묘한 인연이 있었다. 언론사 초년병 기자시절 국제부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필자는 새벽녘에 국제뉴스를 쏟아내는 텔레타이프에서 드골 거부권 행사라는 기사를 보고 함께 야근하던 편집담당자를 설득해서 1면 뉴스로 보도했다. 경쟁지에서 놓친 중요한 기사였다며 특종상을 받았다. 그러나 드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럽을 분열시키는데 주력해 왔기에 EEC 가입을 찬성할 수 없다"라고 했던 그 한마디가 더 기억에 남는다. 역사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지도자의 안목이 감동적이었다. ▶드골 대통령의 예언대로 영국은 1973년 드골 별세 후 어렵게 EEC에 가입한 뒤 사사건건 유럽 통합에 엇박자를 놓다 40여년 만에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그 사이 10여 개국의 EU는 28국으로 확대되었으나 영국 하원은 결국 이번에도 세 번째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드골의 예언이 또 한 번 적중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