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 내과 교수


1년 전 서울 모 대형 병원의 간호사 자살 사건으로 의료계의 '태움'이란 말이 사회에 처음 알려졌다. 올해 초 또 한 명의 간호사가 유사한 상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달, 고 박모 간호사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는데 '구조적 문제에서 야기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자살'로 결론을 내려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자살'이라는 유족들의 주장과는 시각 차이를 보여준다.

세간에는 태움이란 단어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알려진다. 생명을 다루는 긴장된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태움이란 단어는 '위계와 엄격한 훈련'이라는 느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붙게 된다. 이렇게 단어가 주는 양가적(兩價的) 느낌 때문에 현장에서는 인격 모독, 따돌림 등 폭력성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도 있고 나태, 불성실, 비협조가 '피해자'라는 가림막 뒤로 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태움이란 단어만으로 이들 문제를 다룰 때는 쟁점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위계 질서, 엄격한 교육과 모독, 따돌림, 괴롭힘의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앞서 두 사건들은 태움이란 이름으로 일어난 행위를 '파워 해러스먼트(power harassment, 힘에 의한 학대)'의 관점으로 다루어야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파워 해러스먼트는 직장 내에서 지위나 권력을 바탕으로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파와하라(パワハラ)'라는 말로 정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힘희롱'이라는 단어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교육 중 파워 해러스먼트는 현장에서의 교육 훈련이 관례나 개인의 성격과 습관에 의지하여 이루어질 때 발생할 여지가 많다. 한 설문 조사는 4~6년 선배 간호사로 이루어진 현장의 교육담당 간호사(프리셉터라 불린다)와 신규 간호사 간에 태움이 가장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혹자는 이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고를 없애려면 차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교육과 훈련이 지침과 매뉴얼을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교육자 쪽도 평가 및 관리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간호 업무들은 매뉴얼에 따른 프로세스의 이행하는 과정들로, 상급 간호사, 교육 간호사, 신규 간호사 모두 그것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장에서 상급자가 교육해야 할 유일한 것은 시스템과 매뉴얼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최고와 최선을 고집하는 조직일수록 약한 개인을 조직의 약점으로 여겨 찾아내고 라벨을 붙여 집단에서 격리하려는 본능이 있다. 개인을 개조하거나 제거하면 조직이 강해질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군대에서는 '관심 사병' 문제를, 병원에서는 '태움'의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개인을 다그치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이 확보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Policy & Procedure', 즉 '매뉴얼'이다. 지난해 모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경우, 태움을 받아야 할 것은 주사제를 조제한 당사자가 아니라, 주사제 처리 프로세스에 대한 병원 정책이다. 병원은 시스템을 검토 분석해서 문제를 발견해내고 개선해야 한다. 만약 현장에 사람을 다그치고 책임을 지워 해결하려는 조짐이 발견된다면 제거하고 예방하여야 한다. 태움은 조직의 피로감과 분열 조장으로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전문가들은 태움 문화가 생기는 원인들의 가장 근본에는 '인력부족'이 있다고 지목하고 있다. 아무리 병원이 노력하여 교육제도, 인사관리제도, 고민·고충 상담프로그램의 시스템을 갖춰도,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면 취지대로 가동할 수가 없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차치하고, 국민을 생각한다면 병원들이 간호인력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가를 책정해 주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간호인력 수급에 대한 로드맵도 가지고 있길 바란다.
보건의료 분야는 새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는 분야이며, 많은 직업군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무용 계급 출현까지도 우려되는 4차 산업혁명 이후 사회에서 보건의료인력은 수요와 필요성이 늘어날 대표적 직업군이라는 것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