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 앓아 눈썹 세개로 나눠졌을 땐 '삼미자'
고향 강가 이름딴 '열수'
자신을 삼가며 '여유'
▲ '열수(洌水)'라는 호를 쓴 '매화병제도' (고려대박물관 소장)
▲ '열수(洌水)'라는 호를 쓴 '매화병제도' (고려대박물관 소장)

 

이름과 자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지만 호(號)에는 세계관과 인생관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다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선생의 아명은 귀농(歸農)이다. 부친 정재원이 사도세자 변고에 시파에 가담하였다가 벼슬을 잃어 귀향할 때 다산이 출생하여 자를 귀농이라 지었다. 관명(冠名)은 약용(若鏞)이다. 관명은 관례를 치르고 어른이 되면서 새로 지은 이름으로 보통 항렬에 따라 짓는다.

그런데 선생은 항렬자인 약(若)은 생략하고 '정용'이라 자칭했다. <자찬 묘지명>에서 "이는 열수(洌水) 정용(丁鏞)의 묘이다. 본명은 약용(若鏞),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로 적어 놓았다.

자는 미용(美庸), 송보(頌甫), 호는 삼미(자)(三眉子), 열수(洌水), 열수초부(洌水樵夫), 태수(苔), 문암일인(門巖逸人), 탁옹(翁), 죽옹(竹翁), 균옹(筠翁), 탁피려인(皮旅人), 다산(茶山), 철마산초(鐵馬山樵), 자하산방(紫霞山房), 사암(俟菴),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선생은 천연두를 앓아 오른쪽 눈썹 위에 흔적이 남아 눈썹이 세 개로 나누어지자 스스로 호를 삼미자(三眉子)라고 했다. <삼미자집>이 있는데, 이는 10세 이전의 저작이다. 열수라는 호는 선생의 세거지가 마현으로 한강가이어서다. 한강의 옛 이름이 '열수'임을 고증하여 자호하였다. 열수와 열수초부는 지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가끔씩 사용했다.
선생의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여유'라는 뜻은 노자(老子)가 지은 <도덕경> 15장의 한 구절에 보인다.

"여(與, 조심함이여)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두려워하고 유(猶, 머뭇거림이여)함이여! 사방에서 너를 엿보는 것같이 네 이웃을 두려워하라(與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선생은 풀이를 이렇게 하였다.

"아아! 여와 유, 이 두 자는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니겠는가? 대저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사람은 추위가 뼛속을 파고들어 아주 부득이 하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다. 사방 이웃이 두려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염탐하고 살피는 것이 제 몸에 닥칠까 염려하여 비록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 법이다(嗟乎 之二語 非所以藥吾病乎 夫冬涉川者 寒切骨 非甚不得已 弗爲也 畏四隣者 候察逼身 雖甚不得已 弗爲也)"라 자탄한다.

선생이 그렇게 남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래 자신을 삼가며 지은 호가 바로 '여유(與猶)' 두 자였다. 이 해가 선생 나이 39세인 1800년이다. 바로 선생을 아껴 주던 정조가 승하한 해이기도 하다. 선생은 이미 정조의 죽음에서 이 세상을 험난하게 살 것임을 직감하고 지은 호이다. 선생은 '여유당(與猶堂)'을 집에다 편액하여 걸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선생은 탁옹, 죽옹, 균옹이란 호를 썼다. 모두 '대나무 늙은 이'이다. '대나무 껍데기 나그네'인 탁피려인이란 호도 이 시절 지은 듯싶다. 다산으로 이주하기 전해인 1807년, 선생은 강진읍 귀양살이하는 곳에서 채소밭에 대를 심고 '종죽시(種竹詩)'를 지었다. 아래는 '다산팔경 노래(茶山八景詞)'중 한 수이다.

잔설 덮인 응달에 바위 기운 짱짱하고 淺雪陰岡石氣淸
높은 가지에 잎 지느라 새삼스레 소리날 때 穹柯墜葉有新聲
한 언덕에 남아있는 어린 대나무가 猶殘一塢蒼竹
서루의 세밑 풍경을 지켜주고 있구나 留作書樓歲暮情

다산은 지명으로 강진현 남쪽에 있는 만덕사(萬德寺) 서쪽에 있다. 처사 윤단(尹)의 정자 소재명이다. 선생은 이 다산으로 옮긴 뒤 대를 쌓고, 못을 파고, 꽃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 폭포를 만들었다. 또 동쪽 서쪽에 두 암자를 짓고 서적 1000여권을 쌓아놓고 석벽에 '정약용의 석벽'이란 뜻으로 '정석(丁石)' 두 자를 새겼다. 이 해가 1808년 선생 나이 47세 된 봄이었다. (下로 이어진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