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갯벌에 물이 차올라 오듯 봄이 몰려오고 있다. 남녘 지방에서 시작된 꽃축제도 도미노가 쓰러져 오듯 북상해 오고 있다. 주말에 사는 곳 근처의 들판으로 나가 보았다. 공원지구에 묶여 도시 속의 농촌으로 남은 곳이다. 논둑길을 걸으며 개구리 알을 들여다 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이제 막 터뜨린 백목련꽃을 치어다보니 파란 하늘이 겹쳐 보인다. 발밑으로는 아직은 어린 쑥이며 민들레가 지천이다. 하이얀 매화는 절정기를 맞았다. 그 곁으로 벚꽃들이 금방이라도 터뜨릴 듯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옛 시인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했듯이 봄은 역시 들판이 제격이다.
▶돌아오는 길, 수양버들도 연녹색으로 화장을 했다. 물 가까운 곳에 자라고 가지와 줄기가 모두 가늘어 실버들이라고도 한다. 이 또한 대표적인 봄의 전령사다. 이등병 시절, 내무반 주위에 아름드리 실버들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갓 입대한 터라 '저 실버들이 세 차례나 푸르러야 제대하겠구나' 했던 나무였다.
▶그 무렵 희자매의 '실버들'이란 노래가 크게 히트했다. 애절하기 짝이 없는 멜로디며 노랫말이 가슴을 흔들었다. 손에서 물걸레 떠날 날이 없던 이등병이 실버들을 쳐다보며 '실버들'을 흥얼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실버들'의 노랫말이 소월의 시(詩)인 줄은 모른채였다. 나중에사 알고는 역시 소월은 소월이구나 했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 놓고도/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한갖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 20여 년 전, 시골 집에 15년생 벚나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마음껏 자라나 만개하면 지붕까지 벚꽃으로 뒤덮인다. 해마다 '벚꽃 그늘 아래 한잔'을 꿈꾸지만 올해도 틀렸다. 대개 4월 초순이더니 올해는 3월말에 피었다가 이미 졌다고 한다. 이렇듯 봄은 왔는가 하면 어느새 떠나간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두고두고 사랑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2절은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로 시작된다. 마치 저만치 떠나가는 봄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잠시 세상 일을 잊고 봄에 취해보려 한 넋두리가 길었다. 짧은 봄이 떠나가기 전, 마음 속 세상 티끌 다 비우고 새 봄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