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삼중 정박된 배 사이 이동하다 사고난 듯
유가족·업계 "선석 부족·안전시설 부실" 지적
▲ 3일 실종됐던 선박수리 노동자 박모(64)씨가 발견된 인천항 남항 서부두 일대의 모습. 바지선과 예인선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다.

인천항 남항 서부두에서 실종됐던 선박수리 노동자가 결국 94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일하던 중 이중삼중으로 정박해 있던 배 사이를 건너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족과 항만업계는 인천항에 배를 댈 곳이 부족한데다, 안전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3일 인천해양경찰서·유가족·항만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11시7분쯤 남항 서부두 해상에서 박모(64)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출항하던 바지선이 박씨의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지난해 12월30일 오전 동구 송현동 자택을 나선 뒤 오후 1시쯤 서부두에 정박 중인 바지선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당시 함께 있었던 목격자는 박씨가 점심을 먹겠다며 다른 배로 이동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박씨가 일하던 바지선에서 부둣가로 나가려면 배와 배 사이를 여러 차례 건너야 했다. 특히 바지선과 예인선은 높이 차이가 3~4m 정도라 로프나 사다리를 이용해야 건널 수 있었다.

가족들은 1월1일 새벽까지 박씨가 돌아오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여겨 일터로 나갔다가 박씨의 차량을 발견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해경은 수일에 걸쳐 수색했지만 박씨를 발견하지 못 했다.

박씨가 실종됐던 서부두 일대는 선박 수 제한 없이 등록만 하면 어떤 배나 댈 수 있는 계류시설이다. 지난 2월 말 기준 116척이 이용 중이다.

서부두 인근에서 30년간 일했다는 선박수리업체 관계자는 "물살에 따라 배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배 높이가 다르다보니 수시로 사고가 나는 지역이다. 겨울철이나 공사가 별로 없을 때에는 배가 이중삼중으로 엉켜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유가족 박모(61)씨는 "고인은 경력 40년의 베테랑이고 마라톤을 즐길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없던 분이다. 최소한 배가 엉키지 않도록 부두를 더 마련하거나 안전하게 배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어야 했다"라며 "해경도 며칠간 수색하다가 결국 포기하더라. 실종자가 있다면 찾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도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지역이다. 배를 더 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두 관리 책임이 있는 인천항만공사(IPA)는 실종사고 이후 남항 서부두와 유어선 부두 일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IPA 관계자는 "시설포화 상태라 작년부터 조사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