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희생자, 명백히 새겨야

 

▲ 碑(비석 비)는 희생자를 위해 돌(石석)을 세우고 몸을 낮추는(卑비) 것이다. /그림=소헌

 

4월이 오는 제주에는 유채꽃이 핀다. 명랑하고 쾌활하다는 꽃말을 지닌 노란빛 군락에서 어우러지는 민중民衆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쩌랴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깊은 한恨이 서려 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1945년 광복을 이룬 조선은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희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9월9일부터 미국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였으니,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자주권이 없어 일제강점기를 연장한 것과 다름없었다. 친일파가 친미파로 바뀌었을 뿐.

척박한 땅을 떠난 후 다시 돌아왔으나, 미군정의 강력한 공출로 인해 민중의 비판은 거세졌다. 1948년 5월 남한에서는 단독 총선거를 실시하는데, 제주는 전국 유일하게 과반수 투표에 미달되어 무효지역이 된다. 민족분단에 반대한 이곳을 미군정은 '붉은섬'이며 좌익 본거지로 규정하고 모두를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이승만은 경찰과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을 투입시켰고.

"원인에는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오로지 진압이다."(미군 사령관 브라운) 군경토벌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자행했으니, 마을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지금도 한라산 중산간도로에는 음산한 기운이 돈다고 한다. 곶자왈, 빌레못, 월정리 주민들의 80%가 학살되었다.

백비작명(白碑作名) 빈 비석에 이름을 지어 넣다. 제주 평화공원에는 글(비문)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 누워 있다. 사건, 사태, 폭동, 항쟁, 의거 등으로 저마다 부르는데 '제주 4·3'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 올바른 이름이 지어지면 그것을 여기에 새겨 넣을 것이다.

▲白 백 [희다 / 밝다 / 우두머리 / 말하다]

1. 白(백)은 해(日)가 비치듯 다른 색깔을 섞지 않은 순수한 흰색이다.
2. 白은 양초(日)의 심지다. 그래서 밝은 것이다.
3. 白은 주먹(日)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모양으로 최고우두머리라는 뜻을 갖는다.
4. '말하다'는 뜻으로 쓸 때 발음은 [백]이 아니라 [자]다. 따라서 '사랑을 고백하다'에서 고백告白은 [고자]가 옳다.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碑 비 [돌기둥 / 비석]

1. (귀신머리 불)은 귀신의 머리를 표현한 글자다. 또한 제왕 옆에 서서 귀신머리처럼 장식한 부채를 들고 있는 모양이기도 하다.
2. 卑(낮을 비)는 부채(불) 들고(공) 시중을 드는 천한 노비奴婢를 뜻하는 글자인데, 주로 '낮다'는 뜻으로만 쓰인다.
3. 碑(돌기둥 비) 한국전쟁에 참여한 무명용사들을 찾아 돌(石석)을 낮게(卑비) 깔아서 비석碑石을 세워주자.

친일청산과 토지개혁 그리고 통일을 열망하는 제주 사람들을 향해, '해안선에 5㎞ 이상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한다'는 포고문에 이어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무려 7년 7개월간 남로당 무장대 토벌작전이라는 미명으로 선량한 주민 3만여명이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니. 2003년 정부는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다.

이제라도 바른 이름을 찾아 주어 역사를 명백明白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