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년 우리나라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11월4일 보건복지부가 동물독성실험 결과 가습기살균제와 원인미상 폐질환과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2017년 8월까지 정부에 피해자로 신고한 이들은 총 5729명(8월4일 기준)이다.
그러나 옥시의 경우,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하여 피해자 구제 및 유사사고 예방 등을 위한 활동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어쩔 수 없이 사과한 것이 전부이다. 소비자피해 문제를 일으킨 글로벌 기업 중 한국 소비자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다른 예로서 폭스바겐 사건을 들 수 있다.

폭스바겐은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사건, 이른바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스캔들(Volkswagen emissions scandal)로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폭스바겐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3건의 화해에서 도합 155억3300만달러의 지급이 결정되었고, 비리 관련 기술자에게는 3년4개월의 금고형이 부과됐다. EU에서도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폭스바겐의 경우에도 특별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의 입법의 미비에 기인한 것이다.
소액의 다수 피해 사건 등 소비자피해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우리나라의 처리과정을 보면 다소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외국기업 등을 상대로 우리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너무 위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다수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일반 민사소송법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공동소송과 선정당사자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동소송은 모든 당사자가 소송에 관여하여야 하는 1대1 개별소송의 병합으로, 분쟁당사자의 수가 극히 많거나 피해액이 경미하여 소송 당사자가 되기를 꺼리는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또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전체 당사자로부터 수권을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선정당사자제도는 동종 개별적 권리를 상정한 제도이지만, 동종 개별적 권리를 집합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구조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한편, 소비자기본법상 집단분쟁조정제도는 우리 소비자분쟁해결제도의 특징 중 하나인 소비자분쟁조정제도에 집단적 분쟁 해결 가능성을 도입한 것인데, 분쟁조정제도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한계를 지닌다.
집단분쟁조정의 경우에도 일반 분쟁조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업자가 조정절차에서 이탈하는 경우에는 조정이 성립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신청요건의 엄격성 등으로 인하여 당초 기대에 비해 그 이용률이나 실적이 저조하다. 소비자기본법상의 소비자단체소송 역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직접 소를 제기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고, 또한 위법한 소비자권익침해행위의 중지 및 금지를 청구할 수 있을 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집단소송과 관련된 제도 중에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제도들을 적정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소액 다수의 피해자를 사법상 구제함에 있어서 선정당사자 제도의 한계 및 소비자기본법상의 집단분쟁조정제도와 단체소송이 갖는 한계가 분명한 이상,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단소송법에 대한 국회의 관심은 매우 커서 20대 국회에서도 현재 12개 법안(철회 1건 포함)이 발의된 상태이다.
소액 다수의 피해에 대한 사법상 구제를 위한 합리적인 대안으로는 미국의 집단소송제도인 class action과 일본의 2단계 집단소송제도를 그 대안으로서 생각할 수 있다.
소비자의 이익보호에 방점을 두는 경우에는 미국식의 집단소송(이른바 opt out형 집단소송)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피해자가 누구라도 전체 피해자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특별히 이 집단소송에서 제외를 신청하지 않는 한 집단소송의 결과에 구속되며,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직접 소송에 나서고자 하지 않는 일정한 소액 피해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자격 있는 소비자단체 등에게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원고적격을 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금은 소비자의 피해구제를 위해 남소(濫訴)의 방지보다는 오히려 집단소송을 활성화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