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 테러 60년 … 벗어날 길이 없다

 

▲ 1일 오후 수원 도심에 위치한 수원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전투기가 기지와 맞닿은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강력한 소음에 주민 삶 파탄

모든 일상서 긴장 놓지 못해

청력 악화·불안증세 등 고통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 호소



직장을 오가는 어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바글거린다.

아파트, 주택, 상가. 온갖 건축물로 빼곡하다. 학교, 유치원, 병원, 관공서, 관광지. 사람 사는데 필요한 시설도 부족한 게 없다.

▲ 영상(QR코드)3월28일 도심인 화성시 병점동 병점초등학교역 정류장 상공에서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고 있다.
▲ 영상(QR코드)3월28일 도심인 화성시 병점동 병점초등학교역 정류장 상공에서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고 있다.

 

그 도시 한복판으로 '군 전투기'가 날아간다. 뜨고 내리고, 다시 뜨고 내린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 같은 일이 수원시와 화성시에서는 매일 반복된다.

도시에 보금자리를 잡은 주민들의 삶은 전투기가 내뿜는 강력한 소음에 파탄이 났다.

대책이라곤 '무(無)' 상태여서 소음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데로 도망 갈 돈이 없으면 고통을 감수해야지." 이들이 갖고 있는 극단적인 선택권은 피해를 방치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

# 전투기로 시작된 불행

"전투기만 지나가면 귀가 '멍~'해. 과거는 어쩔 수 없다고 쳐. 근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대책도 없다면 너무한 거 아니요?" ▶관련기사 3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전투기 소음을 들었던 한길수씨(65)는 전투기의 '전 자'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린다. 분노가 치솟아서다. 한씨는 군공항과 인생을 같이한 사람이다.

전투기의 비행은 권역에 '군공항'이 존재한다는 표시다. 수원과 화성 약 6.3㎢의 면적에 군공항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됐고, 광복 이후 1954년 국군이 인수했다.

당시 군공항과 접경지역인 수원시 평동에서 한씨가 태어났다.

1일 기자와 만난 한씨는 60년 세월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고문 받았다"는 외마디 말로 정리했다.

한씨에게서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난 건 학창시절부터다. 늘 마음 편히 못 있고 안절부절 했다. 언제 '천둥' 같은 소음이 자신의 귓속을 후벼 팔지 모르는 조바심이 원인이었다.

밥 먹을 때, 공부할 때, 잘 때, 모든 일상에서 전투기 소음이 함께하다보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았다.

불규칙적인 비행 때문에 소음에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한씨는 "(귀에 손가락질을 하며)소음이랑 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잘 들리지 않더라"며 "근데 신기하게도 귀가 먹으니 피부가 소음을 감지하는 느낌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투기는 모의 전술훈련을 위해 군공항을 뜨고 내리는데, 주거지역을 포함해 넓은 반경을 통과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소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소음 강도는 웨클(WECPNL·항공기소음단위) 별로 다르다. 한씨의 주거지는 옆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인 90웨클을 오간다.


# 소음에 병들다

여기서 약 7㎞ 떨어진 화성시 병점동도 비슷한 수준의 85웨클. 6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용택(56)씨는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다 못해 최근 환청까지 들린다고 한다.

김씨는 "간혹 주변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 느끼는데, 나만 전투기 소리가 귀에 울리는 일이 있다"며 "한 인간이 100의 스트레스를 축적할 수 있다면 난 이미 100이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한 주민도 있다.

군공항과 맞닿은 화성시 황계동 주민 윤여일(60)씨는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한 지 오래다.

그는 전투기 야간비행이 극도로 심했던 시기, 잠을 잘 못자 신체적 건강이 나빠지고 동시에 불안증세 등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수면제 등 약에 손을 댄 적도 있다. 윤씨는 "전투기 소음으로 부모님부터 나까지 고통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계속된다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글·영상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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