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완연한 봄 4월이다. 봄의 통과의례처럼 모처럼 쉬는 날 거실 한편 책장 정리를 했다. 기억해 보니 지난해 봄 정리해 놓은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게 없는 듯하다. 대부분이 10년 이상 오래된 책들이다. 생각해 보니 최근 몇년 동안 서점을 찾아 책을 산 일이 거의 없는 듯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뒤처진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인터넷 검색하기도 바빠 서점 가서 책 사볼 엄두도 못냈다고 스스로 핑계를 댄다.책장 안 어느 책은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오랜 책 특유의 냄새가 정감있고 손때 묻은 빛 바랜 책에서는 포근함마저 느껴진다. 오래된 책일수록 더 그렇다. ▶인천의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동구 배다리 헌책방 거리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 곳은 인천의 유일한 책방골목이자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한때 헌책방이 40여곳에 이를 정도로 활기를 띠기도 했다. 전문 고서적부터 소설책 등 없는 책이 없을 정도였으며 운수가 좋으면 새책 같은 헌책을 살 수도 있었다. 책 앞부분 몇장에 줄쳐진 연필자국을 지우는 팔품만 팔면 부모한테 받은 새책 값의 20~30%는 오롯이 용돈으로 챙길수도 있었다. 지금 이곳은 좋았던 시절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헌책방 5곳만이 문을 열고 옛 헌책방 거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국 곳곳이 옛 전통을 보존해야 한다며 너나 없이 추억 소환에 나서고 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도 오래전부터 지키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의 하나다. 며칠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동구가 이 헌책방 거리에 있는 헌책방들을 지역 서점으로 인정해 행·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헌책방들이 그동안 인천시가 지역 서점에 주어오던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새책을 취급하는 서점은 서적 소매업으로 분류돼 지원했지만 헌책방은 기타 중고 상품 소매업으로 분류돼 서점으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새책만 책이고 헌책은 책이 아니란 소리로 들렸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은 곳곳에 널려 있다. 배다리 헌책방들에 대한 그동안 인천시의 지원 제외도 이 같은 사례 중 하나다. 동구의회가 나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다행이긴 하지만 다른 곳의 헌책방은 앞으로도 헌 것 취급을 받아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규정은 의미가 없다. 이번 주말에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찾아 추억에 잠겨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