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이학박사

대청도에 살고 있는 동박새를 아시나요? 동백나무는 남쪽에 많으니 동박새도 그 곳에 살 것 같은데, 왜 대청도에서 사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바로, 대청도를 비롯해 덕적도와 백령도에도 동백나무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를 가지고 있거나 이동이 가능한 동물들은 경쟁이 치열한 무리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을 자주합니다.
대청도에 서식하는 동박새의 이전 개체들도 한반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던 시절, 동백나무 숲을 찾아 이곳의 섬들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때 이미 동백나무의 무리는 대청도와 백령도, 함경도 내륙까지 영역을 넓힌 상태였습니다.

동백나무는 원래 따듯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마지막 빙하기가 오기 직전까지는 제주도에서부터 일본의 아오모리 지방까지 넓게 서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대청도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잎이 푸르고 넓은 상록활엽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추위로 인해 많은 상록활엽수는 버티지 못하고 침엽수와 떨기나무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동백나무가 오랜 세월을 버티고 버티어 한반도에서는 최북단의 자생군락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청도는 겨울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따뜻한 남쪽 해류의 영향을 받아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대청도 동백나무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이곳 동백나무는 남쪽의 동백나무보다 꽃이 약간 작고 꽃잎들이 덜 벌어집니다. 이런 특이성 때문에 대청도의 동백나무는 1933년에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에서 최북단 동백나무 자생북한지(冬柏自生北限地)로 특별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동백나무의 꽃술과 꿀은 여러 새들과 벌, 나비들에게 좋은 먹이가 됩니다. 동백나무가 동박새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추운 겨울 꽃을 피워도 동박새가 꽃가루를 여기저기 옮겨주어 열매가 무사히 맺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동백나무는 먼 조상 때부터 남쪽 따듯한 곳에서 꽃을 피우던 습성이 유전적으로 남아있어서 추운 겨울이 있는 대청도로 올라와 적응하면서도 꽃을 피우던 시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겨울은 꽃가루를 옮겨 줄 수 있는 다른 곤충들이 없어 동박새가 도움을 줍니다.
사실 동박새 역시 먹거리가 없는 겨울에 동백나무 꽃의 달콤하고 영양가 많은 꿀을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동백나무와 동박새는 이렇게 서로서로 도우며 대청도에서 사이 좋게 공생하고 있습니다.

동박새 덕분에 열린 동백나무 열매는 예로부터 아낙네들의 머리에 윤을 내는 기름으로 쓰였습니다. 사람들은 동백나무의 꽃과 잎을 약으로 쓰기도 하고, 단단한 줄기는 숯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동백나무의 재질 또한 단단해 오래 전부터 빗, 다식판 등 여러 가지 생활도구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동박새 외에도 동백나무의 도움을 받는 생물이 있습니다. 바로 곤충인 동백밤바구미입니다. 동백나무의 열매는 꽤나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어 속 안의 씨앗이 완전히 여물 때까지는 열어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덕분에 동백밤바구미는 동백나무 열매가 익어갈 때 단단한 껍질에 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알을 낳고 애벌레들이 과육을 먹으며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합니다.

어느덧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도 지났고 조금 있으면 봄 농사준비가 시작되는 청명도 다가옵니다. 한반도 서해 최북단이라는 낯선 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아름다운 공생을 볼 수 있는 대청도로 봄 여행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