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항거'를 본 관객수가 114만명이다. 특히 수원 기생 김향화가 등장하여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수원읍내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29일 수원기생들의 만세시위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자혜의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던 기생 30여명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과감하게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펼쳤고 일본 경찰은 더욱 가혹하게 탄압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주도한 김향화는 그날 구속되어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 김향화는 유관순,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등과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 감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영화 '항거'의 모티브이자 주무대이기도 하다. 이때 감옥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기생 김향화였다.

2019년 3월말 현재 정부가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하여 포상한 전국의 독립유공자는 1만5511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433명으로 전체의 2.79%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해까지 여성독립운동가는 357명이었으나, 올해 정부가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삼일절을 맞아 75명을 발굴 포상한 것이 이 정도가 되었다. 1962년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본격화될 때 여성독립운동가로는 남자현, 유관순, 김마리아, 안경신, 이애라 등 5명이 서훈되었다. 남자현 지사는 2등급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고, 다른 4명은 3등급의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을 뿐이다.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건국훈장 대통령장, 건국훈장 독립장,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까지 총 7등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1966년 중화민국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이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훈격인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어느 누구의 훈격보다 높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3등급의 독립장을 수여받았던 유관순 열사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고 1등급의 대한민국장으로 추가 서훈됨으로써 최고 훈격을 받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독립운동가가 되었다. 국민청원과 국회 특별법 제정을 통해 훈격의 승격을 이룬 것인데, 학계의 논의보다 정치적 입장이 우선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3·1운동의 상징'으로서 유관순 열사의 역사적 역할과 가치를 높이 평가한 셈이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30명에 불과하다. 여성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장을 받은 인물은 쑹메이링과 유관순 2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통령장 1명(남자현), 독립장 9명, 애국장 39명, 애족장 140명, 건국포장 49명, 대통령표창 193명 등 모두 433명이다.
의병투쟁이나 만주의 무장투쟁과 같이 남성들에 의해 수행된 독립전쟁이라는 특성과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남성중심 사회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적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독립군에게 밥과 빨래를 해준 숱한 여성동지들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 박한 대접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무명과 익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수원박물관에서 수원여성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전시를 개막한다. 여성독립운동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자료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족사의 분수령인 3·1운동은 그래서 위대하다. 독립운동의 큰 흐름을 만들었고, 평범한 이웃사람들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3·1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어느 정도 사회활동이 가능했던 학생, 교사, 간호사, 기생, 기독교인 등이었다. 그런 점에서 1910년 삼일여학교 제1회 졸업생 나혜석, 박충애, 차우르다(차인재), 홍보배 등이 주목된다.

이들 가운데 나혜석은 3·1운동으로 5개월 동안 구금되었고, 박충애도 평양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탈출해 박승호로 활동했다. 1920년 수원지역 학생 비밀결사였던 '구국민단'에 참여한 삼일여학교 교사로 차인재는 이후 미국으로 떠나 남편 임치호와 함께 안창호 및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다. 홍보배는 구국민단 사건으로 19살에 순국한 이선경과 뜨거운 사회주의자 이현경의 올케였다.

지난 2018년 차인재, 최문순 지사가 2019년 3월에 문봉식 지사가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다. 최문순은 구국민단 재무부장으로 활동한 경기고녀 여학생으로 구국민단 단장 박선태는 3살 많은 외삼촌이었고, 나혜석은 고종사촌 언니였다. 문봉식은 서울 실천여학교 3학년생으로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한 만세시위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되었다. 늦었지만 그나마 역사에 호명된 인물들은 다행한 일이다. 아직도 숱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