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경제부 차장

앉아있다 일어서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제 개장까지 한 달 남은 인천항 크루즈터미널이 그랬다. 오며가며 스쳐 지나던 곳에 다가가자, 아직은 휑한 민낯을 볼 수 있었다. 터미널 건물만 훌륭했을 뿐이다. 주변 공간은 허허벌판에 흙무더기만 쌓여 있다. 크루즈 관광객들이 인천을 처음 마주할 풍경이 이렇다니, 괜히 부끄러웠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4월26일 터미널 개장식은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이날 터미널에서 출발할 '코스타 세레나'호는 승선 관광객을 거의 채웠다고 한다.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인기상품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심하게 초라한 시작은 아닌 셈이다.

사실 걱정은 다른 데 있다. 터미널, 도로, 도시철도 같은 기반시설은 항상 지역 숙원사업처럼 여겨진다. 건설되면 뭔가 한꺼번에 바뀔 듯 기대를 모으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 서구 주경기장 건설이 인천 최대 이슈일 때가 있었다. 정부가 건설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하라고 권고하자, 서구에서 가히 '민란'이라 부를 만한 반발이 나왔다. 일부 정치인들은 삭발까지 감행했다. 결국 시는 정부 지원을 일부 받아 4900억원을 들여 경기장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지금 서구 주경기장은 어떤 모습일까. 인천시설관리공단이 입주한 관공서 건물처럼 쓰이고 있다. 물론 비정기적으로 큰 체육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래도 과거 기대만큼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긴 어렵다. 주경기장을 비롯한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시아경기대회 경기장들은 연간 1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는 중이다.

크루즈터미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크루즈산업이라는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터미널을 지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내용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저 콘크리트 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천에는 이런 건물이 참 많은데, 크루즈터미널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말아야 한다. 인천시·인천항만공사·인천관광공사는 다음달 개장식까지 '크루즈 전용터미널 성공적 개장을 위한 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해산할 게 아니라 크루즈 유치와 관광상품 개발에 계속 함께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기관끼리 자그마한 일로 서로 싸우거나, 결정하고 해결할 일을 이해관계로 그르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야 인천이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