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에 숨겨진 일본의 속마음
▲ 유정희·정은우 지음, 아이네아스, 220쪽, 1만3000원.


20세기 가장 유명한 일본만화인 <드래곤볼>이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원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주장한 최초의 책이다. 만화 <드래곤볼>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물론,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세계사에 대한 컨텍스트를 완벽하게 분석함으로써 학술적으로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와 태평양 전쟁은 당시 아시아인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으며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아시아인들의 기억과 감정에 지워지지 않는 아픈 상처들을 남겼다. 이런 이유로 한국, 중국, 그 밖에 피해를 입은 나라 사람들에게 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기술은 명확하고 획일적이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수탈, 만행, 학살, 잔혹상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일본이라는 악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드러내는 기록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들 피해국의 역사교과서, 매스미디어, 그리고 대중문화는 예외적인 서술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이런 획일적인 서술경향이 주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일본열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스펙트럼의 이야기와, 사고경향들, 혹은 기억들, 또는 주장이나 상상들이 노골적이지는 않으나 일본인 사이에서 주입되고, 공유되고, 복기되며 재생산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전쟁의 폭풍이 일본을 휩쓰는 동안 그들의 나라가 무엇을 했어야 하며, 어떤 형태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과거의 죄를 씻어낼 수 있었을지와 관련해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적 열망과 슬픈 후회, 조심스러운 비통감의 표출, 그리고 환상을 자극하는 영감들에 대한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하여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 대중문화와 그 배출창구로서의 '만화'는 끊임없이 전쟁의 기억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과정으로 독자들에게 역대 가장 유명한 일본만화작품인 <드래곤볼>의 서사구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들은 일본의 과거를 소환하고, 전후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형성을 반영하며,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또한 독자들이 일본제국주의와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 국가의 시각을 벗어나 일본인들이 그들 스스로와 과거 세대의 죄를 지워가며 어떻게 과거를 기억해왔고, 또 기억하려 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과연 일본 대중문화의 과거와의 화해 시도가 아시아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 속에 이루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총체적이고 인류학·역사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대단히 도발적인 방법으로 대중적이며 학술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