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주의 한계 담긴 필독도서는 '금서'로
▲ 장우성(張遇聖) 화백이 그린 다산 초상. 다산은 유난히 털이 많았다. (다산기념관 소장)

갑산파의 <목민심서>를 통한 사회주의 구현은 결국 김일성과 마찰을 빚는다. 김일성은 중공업 중시 정책을 추구하면서 군비 확장을 꾀하여 남한을 적화 통일하려 했다. 이에 반해 갑산파는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줄이고 인민 생활 향상에 힘써야 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이었다.

갑산파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소비재 생산과 경공업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하면서 김일성의 이른바 '국방·경제 병진노선'에 반발했다. 결국 유일주체사상을 굳히려는 김일성은 갑산파 제거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1967년 5월4일부터 8일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민족적인 것을 살리고 주체를 세운다'는 구실 아래 박금철과 리효순 등 갑산파를 '봉건유교사상을 퍼뜨렸다', '<목민심서>와 같은 반동적인 책을 당 간부들에게 필독 도서로 읽게 하였다' 따위의 죄목으로 숙청해버렸다. 소위 갑산파가 봉건주의, 수정주의, 부르주아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였다.

1967년을 기점으로 <근로자>, <천리마>, <조선문학>에 실린 실학에 대한 우호 글들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김일성 유일주체사상을 확립하려는 글들로 채워졌다. 다산 선생을 위시한 실학자들은 봉건주의라는 한계성을 지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추론컨대, <목민심서>의 주체와 객체의 문제였다. <목민심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관리(官吏)요, 객체는 소민(小民·백성)이었기 때문이다. 민(民)이 주체가 되는 민본주의를 주창한 공산주의자로서 민을 객체화하여 통치나 보호의 대상으로만 파악한 <목민심서>의 한계성을 예리하게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김일성 자신의 우상화를 꾀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각설하고,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는 도서정리사업을 벌린다. 갑산파가 연구했던 <목민심서>를 비롯한 정약용의 저서들은 금서가 되었다. 북한에서 다산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야 조금씩 재개되며 몇 권의 서적도 출간되었다. (최우석 "이순신·정약용 등 우리 위인 깎아내리면서도 김일성 가계 미화에는 평균 A4 6장씩 할애", <월간조선>통권 제445호, 2017년 4월, pp.370-385 참조)

물론 다산 선생과 실학에 대한 한계성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1974년에 출간된 정성철의 <실학파의 철학사상>은 연구서임에도 불구하고 사상화된 글이다. 그는 이 책에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 운운하며 '실학파들이 어떠한 리론에 기초하여 사대주의를 반대하였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들이 소유한 학문은 주로 옛날 중국 사람들의 철학이론에서 나온 것이며 이미 그 자체가 유물론적이 못되고 관념론적이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고는 '더욱이 정약용은 다른 선행 실학가 홍대용, 박지원과 달리 사회역사에 대한 견해와 자연관에서도 관념론적 입장'이라 못 박았다.

1990년에 들어서 리철화·유수가 번역한 <정약용작품집>(1)이 출간되었다. 리철화 역시 이 책 '머리말'에서 선생을 피착취 인민대중의 근본적인 이해관계의 대변자는 못 된다고 보았다. '그는 자체가 양반 관료인 것으로 하여 봉건왕권이나 양반 통치제도, 통치계급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결코 근로인민의 근본 리익을 대변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에 일관된 사상은 정통적인 봉건유교사상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산 선생의 한계성을 짚으면서도 '대표적인 실학자로 진보적인 사회정치사상과 미학적 견해를 가지고 당시 사회의 현실문제들을 예술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우리나라 중세문학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저들로서도 선생의 진보적 실학정신만은 부인치 못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김일성이 생존했을 때 출간되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갑산파가 승리했다면 '<목민심서>가 구현되는 가상의 나라는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