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정규성 인천탁주 대표가 한국막걸리협회 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마치 인천 막걸리 '생 소성주'가 전국에서 인정받은 듯해 뿌듯하다. 막걸리는 지역성이 살아 숨쉬는 로컬 술이다. 내 고장 막걸리의 맛을 남들도 알아봐 주면 술이 더 당긴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막걸리와 얽힌 이야기를 갖고 있다. 어릴 적 들판에 새참을 내가면서 홀짝거린 얘기는 기본이다. 밀주 단속을 나온 세무서 직원들이 마당까지 파헤치던 기억은 지금도 써늘하다. 1964년 양곡관리법이 생기면서 곡식으로 술을 빚는 일이 불법화됐다. 보릿고개를 못 넘기던 시절, 곡주는 사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절엔 '강냉이 막걸리'나 '카바이트 막걸리'밖에 없는 줄 알았다. 요즘처럼 '목넘김'이 어떻고 '뒤끝'이 어떻다느니, 선택지가 있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 날이 찾아왔다. 1977년 12월 초, 식량부족이 해결되면서 다시 '쌀막걸리'가 나온 것이다. 기자의 논산훈련소 입영일을 꼭 3일 앞둔 날이었다. 덕분에 그때 군 입대 환송 술자리는 온통 쌀막거리로 흥건했다. ▶그러나 잠깐 반짝하고 말았다. 초고도 성장기를 누리던 한국사람들이 막걸리를 그 새 '촌 술'쯤으로 취급했다. 찾느니 온통 '물 건너 온 술(양주)'이고 농민들도 '보리 술(맥주)'을 마셨다. 막걸리가 '아무도 찾지 않는 술'이던 1990년대 초, 경제부에서 주류업계 출입기자를 했다. 진로나 OB맥주 등만 들락거리던 기자에게 서울탁주에서 취재 요청이 왔다. 막걸리를 되살리기 위해 캔 막걸리 '월매'를 개발했다는 거였다. 지금은 '장수 막걸리'로 잘 나가지만 당시 마포의 서울탁주 양조장은 풍경부터가 스산했다. ▶작년 가을부턴가 집에서 저녁을 할 때면 반주를 막걸리로 한다. 가게 진열장에서 그날 그날 골라 마시곤 했다. 어느 날 충청도에서 올라온 막걸리를 들고 나오다 소스라쳐 놀랐다. 무슨 공산품도 아니고 유통기한이 1년씩이나 됐다. 갑자기 '굿모닝 인천'에서 읽은 소성주 자랑이 생각났다. 소성주는 살아있는 막걸리 맛을 위해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맛을 위해 긴 유통기한의 수익을 포기한 막걸리. 그래서 유통기한이 전국 최단인 10일이다. 이 10일 동안도 발효 활동이 계속돼 매일 새 맛이라고 한다. ▶이 후 막걸리들의 유통기한을 유심히 살펴본다. 2∼3개월이 가장 많고 아예 출고일자를 적지 않은 것도 있다. 신임 한국막걸리협회장의 소신도 맘에 든다. 막걸리가 꼭 '세계화'나 '고급화'로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부담없이, 즐기는 술이면 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술 이야기를 쓰니 술술술 잘도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