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희망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사회현상을 분석한 여러 연구보고서는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청년들의 성공 여부가 가정의 배경 요인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계층 이동 사다리로 기대한 교육의 현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명문 대학에 입학해, 훌륭한 직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다.

계층 이동의 절망감이라면 건전한 사회라고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교육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김상곤 초대 교육부총리(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는 2017년 7월 5일 취임사에서 "여러 선진국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축소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유은혜 부총리도 "부모의 소득격차가 교육기회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고 교육이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공교육의 틀이 무너지고 사교육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의 학교는 오히려 빈곤의 대물림을 방관한다는 지적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시장논리가 교육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950~1960년대의 기능주의를 추종하던 사회에서는 지위배분이 개인의 성취 능력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균일하게 주어져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확신을 갖던 시대였다.

또 성공과 실패는 오로지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에 달렸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가 균등히 제공되기 때문에 사회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는 관점이 20세기 중반의 주류였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분명한 명분을 과시해 왔고,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은 희망과 도전의 사다리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균등사회, 능력주의·업적주의를 숭상하는 젊은이들은 이제 많지 않은 것 같다. 출발 조건이 다르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 수저계급론이 이 시대의 당위론처럼 회자된다. 우리 사회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제공하고 있고,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달려있다는 주장은 강변에 불과하게 됐다.

비슷한 재능을 지닌 청년이라 하더라도 동네 구멍가게 아버지의 발품을 도와야 하는 입장과 1000만원짜리 사교육으로 무장한 젊은이의 학습 성과는 같을 리 없다. 그러니 실적·업적주의 이념으로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거나 교육의 미흡한 결과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동의할 수 없게 된다. 원인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교육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갈등주의적 관점에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교육을 통해 부의 대물림이 가능하다면 교육의 계층 이동 사다리 기능에 기대하긴 어렵다. 아파트 현관 게시판에 과외 전단지가 사라지지 않을 이유이다.

우리는 왜 교육 투자에 몰입할까.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그 기회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산간벽지 호롱불 밑에서 수능 만점이 나올 리 없고, 노량진 학원가를 등진 사찰 독학이 국가고시 합격의 지름길이 될 수 없는 시대다. 교육은 혈통, 가문, 신분과 같은 귀속적 지위와 무관하게 개인의 성취 요인이 작용할 뿐이라는 주장과 관점은 케케묵은 사고로 전락했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 영향요인 변화 분석'(이용관, 38권 4호, 465-491)에 따르면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은 '부모의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자원, 경제적 자원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가구소득이 낮은 청년층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낮다'는 결과로 함축된다.

경제 양극화의 심화는 계층구조를 고착화 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늘날 개인의 노력에 의한 계층이동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의미이다. 조사대상 30세 미만 청년들이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2013년 53.2%였으나 2017년 38.4%로 대폭 줄어들었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잘살게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1990년 81.1%에서 2017년 45.6%로 주저앉았다.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회가 절실하다. 불평등한 교육구조를 바로 잡지 않고는 꿈과 희망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견고히 놓을 수 없다. 사교육이 판치고 학벌사회를 추종하는 한국의 사회적 구조로는 정상적인 교육 체제가 작동할 리 만무하다.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10명 중 4~5명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 교육에 기대하고 있다. 공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