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4년 8개월 만이다. 광화문광장에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던 세월호 천막이 거둬지고, 기억·안전 전시공간으로 조성된다고 한다. 2014년 4월,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한껏 부풀었을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속절없이 스러져간 304명의 억울함을, 해운계의 정경유착이나 해경의 늑장 대처를 방관한 정권의 무능을, 세월호 피해 관련 10여 곳의 대책본부를 마련하고도 여전히 요원한 진상규명을, 이대로 영영 잊힐까 두려워하는 마음들을 모두 뒤로 한 채 분향소 구조물과 천막 등 4년여의 기억을 서울기록원으로 옮긴다.

세월호의 기억은 비단 우리에게 후진국형 사고의 위험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억울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이기적 인간상인 일종의 '빅미(Big-Me) 문화'의 부끄러운 민낯을 확인해야만 했다. 더 먹먹한 사실은 그 부끄러움의 확인이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집착하며 결국 자신을 부풀리고,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암시하며 자신이 누릴 가치나 얻어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자기도취적으로 해석하고, 끊임없는 자기 확대 성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그 민낯이 드러난다.

물론 그것은 소위 '능력'이라는 핑계로 자행된다. 우리 사회는 '능력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충분히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느끼는 소유의 갈망과 충분하지 않다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오만함과 특권의식, 자신의 몫을 늘리는데 집착하고 겸손이나 절제의 태도를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이라며 무시한다. 자신은 특별하다는 확신을 갖고, 약삭빠르고 비윤리적인 것을 세련되고 교양있다며 자기 최면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빅미 문화가 양산한다.

한국갤럽은 한국행정연구원과 매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발표한다. 해당 조사는 우리 사회 여러 부문별 갈등이나 일반 국민 인식과 가치관 변화 등의 추이를 파악하여 사회 집단이나 기관별 국민의 신뢰감을 측정하고, 국민 대통합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수행된다.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기관으로 꼽는 곳은 국회이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비위와 비리, 역사와 시민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망언들, 처벌로 귀결되기 어려운 특권은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들이다. 또한, 이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 것은 앞으로 예고된 문재인 정부 2기 장관 인선과 관련된 인사청문회의 모습이다.
현 정부 들어서 내세운 소위 인사의 7대 원칙(병역기피, 세금 탈루, 불법적 재산 증식, 위장 전입, 논문표절 등 연구 부정,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을 적용한 장관 인선은 현 인사검증 시스템의 실패가 문제인지, 혹은 지극히 일반적인 예의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사들이 대거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포진해 있는 것인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5·18 피고인 신분으로 10개월 가까이 재판을 거부해오다 법원의 강제 구인영장 발부에 광주로 내려간 전두환 전 대통령은 40여년의 세월 동안 공권력에 무참히 짓밟혀 생때같은 핏줄을 잃은 광주시민들에게 "이거 왜 이래"를 외치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는 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가 광주의 역사 앞에 쏟아놓은 무참한 거짓과 궤변, 반성 없는 파렴치함에 비하면 그 뻔뻔함은 가벼운 전초전에 불과할 수 있다. 감히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 회고록이란 명목으로 거짓을 유포한 그에게 도덕적 수치심을 바라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했던 당시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정권에 희생당한 유태인들의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화환을 바쳤다. 한 나라 국가원수의 행동으로 지나침이 있었다는 국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2년 뒤 선거에서 빌리 브란트는 압승을 거두었다. 세계사적인 그의 용기와 지혜는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논함에 있어 자주 회자된다. 건강한 사회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구성원은 리더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의 필수조건이 바로 빌리 브란트가 보여준 선명성과 자기희생일 것이다. 쉬운 해결책만을 추구하다 보면 지성은 고사하고 근원적인 정체성마저 퇴색해버릴 수 있다. 결국, 자기 편의 잘못에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조직은 발전하지 못한다. 얽힘의 시대에 역사의 되먹임을 거울삼아 우리는 기억해야 할 우리의 책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