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일제 잔재 용어 정비 외면 … 서울과 대비
인천시와 인천 기초지자체들이 일하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낱말 '근로'를 행정 용어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 등 타 지자체가 조례를 정비해 일하는 사람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노동'으로 명칭을 바꾸고 있는 행보와 대비된다.

19일 인천시와 10개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의 조례를 살펴보니 노동과 관련된 대부분 조례에서 사용되는 공식 행정 용어는 '근로'였다.
노동이란 낱말이 조례명에 사용된 경우는 인천 남동구의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 '노동단체 및 노사관계 발전 지원 조례' 두 건에 불과했다.
반면 조례명에 근로가 포함된 조례는 인천시와 각 지자체별 최소 2건 이상 나타났다.

'근로'는 사용자에게 종속돼 일한다는 성격이 강하고 '노동'은 사용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5월1일 처음 '노동절' 행사가 열렸지만 이후 군사독재 시절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며 '노동'이란 낱말에 불온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또 '근로'는 '근로정신대' 같은 일제강점기 시절 용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타 지자체는 조례에 있던 용어를 바꾸기도 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8일 '서울특별시 조례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는 서울시 조례 약 50여개에 쓰이던 '근로'라는 낱말을 모두 '노동'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집행부에 조례가 이송됐고 이번 주 중 조례규칙심의회 심의가 끝나면 공포돼 문구가 다 바뀐다"며 "서울이 첫 사례"라고 말했다.

인천에서도 '노동'을 공식 행정 용어로 쓰려한 시도가 있다. 시 산하 공기관에 노동자이사를 두는 내용을 담은 '근로자이사제 운영 조례'는 애초 '노동이사제 운영 조례'였다.
시의회 관계자는 "의원 발의 당시 '노동이사제'였는데 집행부가 근로기준법 등 상위법과 용어가 맞지 않는다고 반대해 상임위에서 최종 '근로이사제'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광주광역시는 같은 정책을 '노동이사제'라 부르고 있다.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은 "용어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제대로 된 명칭을 붙이고 그에 맞는 사회적 인식도 따라가야 한다"며 "우리 사회 대다수인 임금노동자들을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 부르는 게 그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창욱 기자 chuk@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