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의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성 정치인은 참 힘들다. 1억원 짜리 미용시술 논란에 휘말리기도 하고 머리스타일이나 복장이 문제되기도 한다. 여성 정치인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단어로 인해서 늘 유권자의 현미경 같은 시선 앞에 놓이게 된다.
여성 정치인은 정치인의 역할과 여성의 성역할이라는 상반되는 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이며, 정치가 남성의 영역이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여성의 성 역할은 논란거리가 된다. 일례로 여성 정치인들은 TV토론이나 유세 등에서 전통적 남성성에 입각한 연설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 여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남성처럼 전투적으로 응하는 경우 또한 그 장면이 강조되고 부정적으로 다뤄진다.
정치학자 캠벨과 제리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연설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교함으로써 여성연설자가 경험하게 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훌륭한 연설자는 권위적이며, 야심만만하고 경쟁적이어야 하며, 연설시 공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즉 효과적인 대중연설이라 함은 남성성을 요구한다. 이에 비해 여성성에 대한 기대치는 순종적이고 가정적이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결국 공중 앞에서 여성은 순종적이면서도 단정적(assertive)이며, 자기희생적이면서도 야심만만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성공한 여성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서 남성적으로 혹은 여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성 정치인이 경험하는 딜레마이다.
이처럼 여성 정치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인의 양적, 질적 성장은 괄목상대할 만 하다.

여성 후보자 할당제가 시행된 2000년의 16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 수는 5.6%에 불과했지만 2019년 현재는 17.1%에 이르고 있으며 대통령, 원내대표, 당대표로 여성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후반 이후, 남성의 세계라고 통칭되는 역할로의 여성 진입이 크게 늘면서 그 만큼 역량을 축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영대, 의대, 법대 등에서의 여학생의 비율이 증가하고 볍원, 검찰, 대학병원, CEO 등의 자리에 여성이 진입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는 변화의 과정을 경험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동적 변화 속에서도 여성의 역할 특성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로이드 류토우, 로이 가르비치짜보 그리고 마가렛 류토우(Lueptow, Garovich- Szabo, & Leuptow)는 1974년부터 1997년 사이에 연구된 30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해서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성 역할의 변화가 미미함을 발견했으며, 오히려 여성성의 강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연구결과는 여성 정치인이 경험하고 있는 여성성의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성 정치인의 화려해진 외모를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여성정치인의 역할은 정치인으로서의 역할보다 여성으로서의 성 역할에 더 영향을 받는 경향성이 있다(Sanbonmatsu,).

여성 정치인이 남성의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정치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역할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여성 정치인은 남성의 영역을 침범한 존재로서 우호적 평가를 받기보다는 비호감과 적대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성적 외모를 강조하거나 기꺼이 남성 정치인들의 들러리가 되는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 아이러니이다.
여성 정치인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어조로 말을 하면 국민밉상이 되는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도 메르켈과 대처같은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 유권자들도 정치인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서 다른 기대치, 다른 잣대를 적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성 정치인에게 여성성이 족쇄가 아닌 훈장이 될 수 있는 유권자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