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대책위 "뒤늦게나마 기쁘다"

1950년 9월15일, 한·미 해병대가 인천 월미도에 상륙한 인천상륙작전은 당시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집었다는 이유로 많은 국민에게 회자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 이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월미도 주민들에겐 실향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월미도 실향민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미군 부대가 주둔한 탓에 귀향하지 못했다.

1971년 이후엔 국방부가 이곳을 군사기지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귀향이 무산됐다. 인천시 역시 2001년 월미도를 매입해 공원으로 만들며 사실상 월미도 실향민은 고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됐다.

이후 2008년 법정기관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전쟁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월미도 주민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며, 특히 원주민 귀향을 적극 도와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인천시의회는 2011년과 2014년 관련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 보상은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이 아닌 정부의 업무라는 이유에서였다.

조례안이 매번 무산되자 월미도 실향민들은 2014년 월미공원 정문 앞에서 집단 농성을 벌이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보상과 귀향 대책 수립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통째로 잃어버린 월미도 45세대 중 생존자는 고작 30여명이고 그마저도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실향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월미도 실향민 지원 조례안은 올해 법제처의 도움으로 10여년 만에 처음 통과될 수 있었다. 조례안 발의 3번 만에 거둔 성과다.

법제처가 전쟁으로 고향땅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은 지자체의 업무라고 판단한 게 주효했다.

한인덕(75·여)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회장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뒤늦게나마 조례가 통과돼 기쁘다"며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지원금을 신청한 35세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환 기자 imsen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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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그림자… 월미도 실향민 보상받는다 "월미도 인천상륙작전을 끝으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당시 전쟁을 피해 강제로 고향을 떠난 뒤 한 번도 고향땅을 밟아본 적이 없습니다."인천 중구 월미도가 고향인 정지은(75)씨는 6·25전쟁 때 국제연합(UN)군이 월미도로 들어온 인천상륙작전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조용한 섬마을 월미도에 폭격이 시작되며 정든 고향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정씨는 "지금도 월미도 실향민들은 가족과 고향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고향땅도 못 밟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고 말했다.정씨처럼 인천상륙작전 피해로 보금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