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총세무사가 요청한 '부설안' 발굴
목재레일 형태로 소요자재·수용력 언급
목수 인건비 등 총예산도 항목별로 제시
▲ 제물포~서울 노면전차 부설안 공문과 경인트램 견적서가 실려있던 공문철. 당시 인천해관 세무사 스트리플링이 조선해관 총세무사 묄렌도르프에게 발송한 문건으로 본문과 첨부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첨부문서는 경인트램 견적서로서 러시아인 해관원 사바친이 작성했다. 이런 문서는 통상 해관문서라 하고 영문본과 한문본이 따로 전해져 오고 있다. 각 해관에서 올려보낸 문건은 서울 총해관에서 해관별로 일정 분량을 모아 각각 편철을 해서 책자 형태로 보관했다.

 

▲ '트램견적서' 1884. 11. 12. 작성된 것으로 본문에 부속된 문건으로서 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러시아인 해관원 '사바친'의 필적이다.
▲ '트램견적서' 1884. 11. 12. 작성된 것으로 본문에 부속된 문건으로서 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러시아인 해관원 '사바친'의 필적이다.

 

▲ 인천본부세관 화물검사과장 김성수
▲김성수 인천본부세관 화물검사과장

 

얼마 전 한반도 철도건설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발굴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내용인즉슨 미국워싱턴주재 조선공사관에서 1888년 미국인 사업가와 경인선 철도부설에 대해 논의가 있었고 그 계약초안까지 작성된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본 계약까지 이르지 못하고 없던 일이 되었지만 불과 미국과 수호조약에 서명한지 6년 만에 이런 대규모의 사업을 논의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놀랄만하거니와 우리나라 철도도입의 역사를 10년이나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 발굴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공공 교통수단 도입 검토의 역사는 이보다도 4년이나 더 앞선 사료를 이미 본인이 발굴한 바 있다. 그것은 아마도 몇 년 후이면 부산과 대전에 운행하게 될 노면전차 즉, 흔히 '트램(Tramway)'이라고 일컫는 대중교통수단이다.

충분한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1884년경, 초대총세무사(현재 관세청장) 묄렌도르프는 어떠한 계기 또는 의도를 갖고 서울과 개항장인 제물포를 잇는 트램을 구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당시 인천해관 세무사(인천세관장) 스트리플링(Alfred B. Stripling, 영국인)과 해관의 기기사(器機師, 엔지니어)로 고용되어 있던 러시아인 베코프스키(Vladimir S. Bekofsky)에게 명하여 이에 대한 견적서를 작성해 보고토록 했다.

문건을 들여다보면, 인천해관에서는 1884. 11월, 서울과 제물포까지의 노면전차 부설안을 작성하고 공사에 소요되는 예산까지 나름 추계하여 이를 총세무사 묄렌도르프에게 보고하였던 정황이 분명히 나타난다.
아래는 발굴된 문서에서 해당 본문내용만을 번역해 소개한 것이다.

"총세무사님
여기 서울과 제물포 간 목제 노면전차의 정정 비용 견적서를 제출합니다. 아시겠지만 견적서는 목재, 침목의 부설 및 레일에 대한 것과 객차 1량, 화차 1량에 대한 것이며 (레일조성을 위한) 토지수평작업이나 레일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은 제외하였습니다. 본 건과 견적에 대해서는 (해관의 엔지니어인) 베코프스키와 상의하였는데 그가 제안한 방안에 대해 지금 총세무사님께 보고 드리며 그는 공사를 마치기까지 필요한 못에 대해 첫 번째 견적서에서의 95 피쿨(Picul, 5.7 ton)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110 피쿨(6.6 ton)이 필요하다고 추정하였습니다."

이 문건의 정확한 발송일자는 1884. 11. 22.(10. 5, 음)로 되어 있는데, 함께 첨부된 견적서 작성일은 이보다 열흘 빠른 11. 12.로 적혀 있다. 본문에서 베코프스키는 이미 견적서를 보냈지만 이번에 보내는 문서는 수정본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전차노선 부설공사를 위해 필요한 목재와 침목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객차, 화차 및 레일 따위에 대해 상세히 쓰고 있다. 본문에 간결하게 넘어간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견적서에 비로소 추가 설명이 나타난다.

이 부분은 지난 번 발굴된 경인철도 문건에서는 계약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친 반면, 해관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트램 관련 문서는 서울~제물포 간 소요되는 자재(나무, 못, 레일 등)에 대한 부분과, 인건비, 객차와 화차의 수용능력, 건설 총 예산이 항목별로 나타나 매우 구체성을 띤다는 점에서 이번에 발굴 소개된 1888년 철도약장(鐵道約章)과는 차별화된다 하겠다.

당시 인천해관에서는 베코프스키 이외에 구한말 근대건축물을 다수 남긴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인 사바친(Afanasy I. Seredin Sabatin)도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해관의 외근직 화물검사를 맡았다. 첨부문서 제목 '경인트램 견적서(Approximative Speculation of Proposed Tramway)'는 사바친이 직접 작성한 것인데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총세무사청 직원이 문서 편철과정에서 판독할 수 없게 되어버린 관계로 부득이 제외한 곳이 있다.

"본인이 서울과 제물포 간 거리를 추정하면 약 24마일이나 정확한 측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본인은 25마일 또는 132,000피트(약 40㎞)로 수용하고 목제 레일의 수량을 각 레일을 표준측정단위로 14피트(약 4.3m)짜리로 9,429세트, 레일 간 거리는 5피트(약 1.5m)로 하였다. 레일의 두께는 5인치(약 13㎝)임."

이 외에도 견적서에서는 소요 목재와 목수의 인건비(1인당/상평통보 100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레일 부설용으로 7~8피트 길이의 나무 가격을 개당 20푼으로 산정하였고, 훈련된 인부 4명이 12~15개 이상의 레일을 부설하는데 각 150푼을 계산하였다. 또, 전체 40㎞ 길이의 레일을 고정하는데 사용하는 못 가격으로 모두 668,750푼 즉, $535 (환율 상평통보 1,250푼/멕시코은화 1달러)이며, 선로를 달리는 객차(Passenger Waggon)는 $300, 화차(Freight Waggon)는 $200 선을 예상하였는데 객차의 수용능력은 10~14명이고 지붕에는 10~12명이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경인트램에 예상되는 총 비용은 상평통보 6,412,890푼 또는 멕시코달러로 $5,130.24로 나타난다. 이 정도의 금액은 총세무사청과 산하의 3곳 해관의 급여와 사무실 경비조로 매달 지급하는 비용과 비슷한 규모로서 상당히 적은 규모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인천해관과 총세무사청에서 구상한 트램은 철강재가 아닌 목재 레일을 부설하는 형태여서 현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트램 형식과는 상당히 특이한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운행에 필요한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목재 레일 위를 달리는데 큰 중량의 증기기관 차량 투입은 어려웠을 것이니, 혹 인력이나 말 같은 동물의 힘을 이용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자료 이외에는 설계도 같은 자료도 일체의 추가 문서도 발견되지 않아 조선 정부나 인천감리서와 어떠한 논의가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묄렌도르프 역시 일기에 이 트램에 대해 기록을 하지 않은 걸로 보아서는 실제 추진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제물포는 우리나라 철도의 발상지이면서도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전 우리나라 노면전차 구상이 처음 시작된 곳이었다. 지난 해 바이오달 방식의 트램이 인천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호주 멜번, 미국 샌프란스시코, 일본 나가사키 시내의 레일을 달리는 옛 정취 가득한 트램이 차량들과 함께 내달리는 날이 올 것인가를 기대해본다.

/김성수 인천본부세관 화물검사과장



관련기사
기록보다 4년 앞선 '경인트램 문건' 나왔다 인천~서울 간 철도 부설 논의가 기존 기록보다 4년 앞서 언급된 사료가 발굴됐다. 더구나 이 자료는 최근 발표된 조선-미국 간 철도 협상 시기 이전 내용인 만큼 구한말 철도 부설 역사에서 개항 인천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김성수 인천본부세관 화물검사과장은 17일 1883년 개항직후 인천해관에서 경인트램을 구상한 사료를 공개했다.김 과장에 따르면 1884년쯤 초대총세무서장(현 관세청장)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는 당시 인천해관 세무사(인천세관장) 스트리플링(A.B Stripling)과 해관의 기기사(器機師,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