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이별은 가벼움으로 격해지는 것
비밀을 묻을 데 없어
가릴 것 없는 갈대로 사는 것
고요에도 뼈가 있다면
뼈처럼 사는 것

그해
습지 모퉁이에서 피를 다 쏟았다
꿇을까봐 아예 무릎을 없앴다
더 줄일 수 없는
가느다란 비밀만 남겼다
가끔
이별할 듯한 연인들이 찾아와 허옇게 피를 말리고 갈 때
아홉 번쯤 일어나 이빨 없는 치를 떨었다
갈대 속에서 세상이 흔들렸다

이별 뒤에 남는 것이 사랑이다. 역설이다. 수많은 밤을 뒤척이면서 고통과 좌절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사랑이다. 이 또한 역설이다. 이별은 "습지 모퉁이에서 피를 다 쏟"을 만큼 처절하고 "아홉 번쯤 일어나 이빨 없이 치를 떨"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별의 아픔은 또한 "무릎을 꿇을까 봐 아예 무릎"까지도 없애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도 한다. "갈대 속에서 세상이 흔들"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별이 없이 어떻게 사랑을 알 것이며, 고통이 없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알까. 바닥에서 처절하게 흔들려 본 사람만이 고요한 정적의 평화로움도 안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