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가장 소리 들어도 '역사 지키기' 멈출 수가 없다
▲ 이명수 장인이 동두천향토사연구소에 전시된 수집품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동두천향토사연구소에 전시돼 있는 파병 미군들이 사용하던 식판.

 

▲ 동두천향토사연구소에 전시돼 있는 파병 미군들이 보던 책.

 

▲ 동두천향토사료관에 전시돼 있는 성냥, 지하철 통행권, 지폐.

월남파병·새마을운동용품·농기구 …
빚내가며 20년간 3000여점 모아
동두천향토사연구소서 전시도
"전쟁유산 간직해야 아픔 반복 안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애국지사 신채호 선생의 한마디가 유독 가슴을 울린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숱한 외세의 침략,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은 6·25전쟁, 순혈로 얻어 낸 민주화 … 이 모든 것들을 겪고도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일궈냈다. 다시는 잊혀도 잊어서도 안 되는 지난날의 과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수집하는 '향토유물수집의 대가'를 동두천에서 찾았다. 열 번째 발견 이명수 장인을 소개한다.

#역사와 흔적을 수집하는 향토유물수집가

'과거'가 있는 곳이라면 이명수 장인은 어디라도 달려갔다.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가족에겐 못난 가장으로 여겨졌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역사'를 그는 모아야 했다.
이명수 장인은 20년째 지역 향토 유물들을 수집해오고 있다. 군 입대를 하면서 사용했던 해군, 월남 파병 관련 용품부터 새마을 운동 용품, 농기구, 의·식·주 생활용품, 관공서 사용 물품, 취미·오락용품, 잡지, 교과서 등 그가 평생 동안 수집한 향토 유물만 해도 3000여점이 넘는다. 각 수집품들은 동두천 향토사료관, 자택, 사학연구소로 나뉘어 보관되고 있지만 현재 그마저도 부족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해서 지금은 셀 수없을 정도로 수 십종, 수 천 점의 유물들이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쓰여졌던 숟가락 하나까지도 수집했습니다. 특히 주한 미군 파병이 이뤄졌던 동두천 지역의 특성상 내전 때 써왔던 전쟁 유산들이 수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장인이 모아 온 향토유물 가운데는 절반 이상이 6·25전쟁 당시에 쓰여진 전쟁 유산이거나 주한 미군들의 군 생활 용품들로 이뤄져 있다. 그의 수집품을 모아놓은 동두천 향토사학연구소에는 한국으로 파병 온 미군들이 쓰던 식기나 전시에 사용하던 통신 장비, 포탄, 탄약고, 군복 등 전쟁기념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또한 이 장인이 유물을 기증한 동두천 향토사료관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던 동두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향토 유물들도 볼 수 있다.
물건들은 미군 부대에 종사하던 이웃들에게 자문을 요청하거나 최전방 휴전선 일대의 고물상을 통해 수집했다. 그는 폐기 처분 직전에 놓인 유물들을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다녀야 했다.

"반드시 수집해야 했습니다. 제가 구한 향토 유물들은 소모품부터 전쟁 유산까지 대부분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물로 취급돼 사라지거나 버려질 위기에 놓인 물건들이었습니다. 이 소중한 유물들을 누구라도 나서 보존해야 했습니다."

이토록 고집스럽게 수집한 향토 유물들은 주변의 질타로 이어졌다.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이 장인이 빚까지 얻어 유물을 사들인 탓에 가족들 조차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그가 수집을 멈추지 않는 것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다.

"저같이 바보 같은 사람도 있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것들을 보존하겠습니까? 저는 후대에 후손들이 이런 전쟁 유산들을 실제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숨기기 급급한 치욕스러운 과거이지만 이것들을 보고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이명수는 역사를 남긴다

이 장인이 역사 보존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대에 입대를 하면서부터다. 경기도 연천 태생인 그는 어렵고 배고프던 시절 "해군에 가면 밥을 많이 준다"는 말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이후 병장의 신분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38개월간 외지 생활을 이어갔다.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 장인은 외향 선원으로 10여년간 배를 타다 1985년부터 동두천에 자리를 잡고 농산물 공판장을 운영했다. 당시 농사를 짓는 이들을 만나오며 농기구 같은 예전 생활용품들을 취미 삼아 모으기 시작했다. 한 두개였던 향토 유물들이 수십 개가 되면서 자비를 들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본격적인 수집에 나서게 된 것은 2007년, 이 장인이 고엽제 판정을 받은 뒤부터였다.

"베트남 참전 이후 잔병치레를 많이 했었죠. 당뇨부터 백내장까지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이게 고엽제로 인한 질병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국가유공자로 지정이 되면서 매달 50만원 상당의 보상금이 주어졌죠. 저는 이 보상금이 의미 있는 곳에 쓰여야 된다고 생각했고 제가 겪은 것처럼 끔찍한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전쟁 유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인은 20여년간 모은 소장품들을 선별해 2016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또다시 전시회를 가졌다. 전시회에 참여했던 관람객들은 하나 같이 놀라워했다. 방대한 규모의 전시품과 보기 드문 군용품들이 한눈에 펼쳐지니 입이 벌어졌다.

"전쟁기념관에서도 못 본 물건들이 이곳에 있으니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져 그마저도 보존하고 있던 유물들은 창고에 쌓아두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 장인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금만으론 수천점의 수집품들을 보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죠. 저는 이름을 남기기보다 역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수집을 멈출 수 없습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