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석 인천 연수구청장

연수구가 옛 송도역사(驛舍) 복원을 위한 첫 걸음을 뗐다. 지난달 전문가들로 복원사업 추진위원회를 꾸렸고 상견례 날부터 진정성 어린 토론이 이어졌다. 수인선 17개 역 중 마지막 남은 역사답게 지역 안팎의 관심도 뜨겁다. 구는 2021년까지 내·외관 복원과 리모델링을 통해 송도역사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송도역은 연수구 근·현대 생활사의 출발점과도 같은 곳이다. 지난 1973년 송도~남인천 5.1㎞ 구간 폐쇄 이후 1994년 송도~한양대 26.9㎞ 구간이 없어지기 전까지 수인선의 종착역이었다. 야목리 일대의 쌀과 군자지역의 천일염, 그리고 소래의 어패류와 수산물들을 옮겨 나르며 매일 역전 앞에 장터가 형성됐다. 그 곳이 지금의 송도역전시장이다.

사실 송도라는 지명에는 아픈 역사가 묻어 있다. 섬도 아닌 내륙에 능허대, 먼우금 같은 우리 이름을 제쳐두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송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치욕스러운 이름이다. 하지만 그 유래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인천에서 송도라는 이름은 서민들에겐 치열한 생활의 현장이었고 현대를 사는 아버지, 어머니들에겐 유년의 추억과 향수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장소다.

송도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것도 송도역과 함께 부근에 인공해수욕장인 송도유원지가 문을 열면서부터다. 여름이면 수도권에서 하루 5만명의 휴양객이 모여들었다.
1996년엔 국민관광지로 지정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이 무렵 송도역에서 지금의 시립박물관 언덕을 넘어 유원지로 향하는 피서객들의 행렬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송도유원지는 수인선 개통 며칠 전인 1937년 7월 21일 풀장과 아동유희장 일부를 개방했고, 이듬해 5만평 규모의 풀장과 해수탕 등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해방 후 유원지는 폐쇄됐고 한국전쟁 기간엔 영국군 휴양지로 사용됐다. 1957년엔 인천으로 반환되어 다시 문을 열었고, 20여년 호황기를 누렸지만 2011년 재정적자로 다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굴곡진 역사만큼이나 송도유원지는 아직도 그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중고차 수출단지가 들어서면서 소음과 분진, 불법건축물 등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불법 컨테이너 적치 문제 등으로 구와 갈등을 빚으면서 소송전까지 이어졌다. 최근엔 타지역 이전 움직임이 일자 80%에 이르는 물동량 유출을 우려해 지역사회가 대체부지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댄 상태다.
돌아보면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늘 후세들의 몫이었다. 새 왕조가 들어서면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했다. 고려 때 '삼국사기'를 펴냈고 조선에서 '고려사'를 편찬했다. 그만큼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길잡이다. 연수구의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송도역사와 송도유원지를 복원해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사업 역시 이 시대의 책임이자 의무다. 복원사업의 첫 발을 내딛는 감회가 남다른 이유다.
연수구는 올해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 일상이 여유롭고 풍요로운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다. 연수문화재단 설립을 검토 중이고 연수문화예술회관 건립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도서관 인프라 확충과 다양한 문화행사도 주민들을 찾아간다. 모두가 국내 최대 크루즈 전용부두의 개장과 함께 연수구의 문화를 세계 관광시장에 내놓는 과정들이다.

옛 송도역사 복원 사업은 송도역전시장과 시립박물관, 송도유원지를 넘어 송도국제도시까지 이어지는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열쇠사업이다. 이제는 송도국제도시가 수도권광역철도(GTX-B)의 출발점이 되고 수인선 일부 노선이 제2경인전철로 활용될 만큼 연수구는 미래 교통 요충지의 조건을 갖춰가고 있다.
이제는 문화 인프라다. 최근 연수구는 송도 석산을 힐링공간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사업에 착수했다.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 이전 문제도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 송도역사의 복원을 통해 지역의 근·현대사를 찾아나서는 작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인천의 근·현대사인 수인선이 달리기 시작한지 80여년이 지났다. 늦었지만 아련한 꼬마기차의 추억이 연수구의 과거에서 미래를 이어주는 부활의 생명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