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는 동구 화수동, 현재 비어있는 일진전기(옛 도시바, 이천전기) 인천공장에서 촬영했다. 촬영 공간에 대한 관심 때문에 '말모이'에 대한 역사를 검색하다가 인천과의 인연이 이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말모이는 1910년대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편찬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다.

1945년 9월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패전한 일본이 챙겨가지 못한 화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중 수취인이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으로 돼 있는 상자 하나가 발견됐다. 이 화물 안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압수당했던 400자 원고지 2만 6500여장 분량의 우리말 사전 원고가 들어있었다.

시계 바늘을 조금 앞당겨 보자. 조선어학회는 표준어 사정(査定)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표준어가 서울말을 근간으로 하지만 다른 지역의 말도 무시하지 않았다. 영화 '말모이'에서 특히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엉뎅이·응디·궁뎅이·궁디·방디 등 각 지역 사투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주인공 판수(유혜진 분)는 엉덩이와 궁둥이가 다르다는 것을 옷에 분필가루까지 묻혀가며 설명한다. 조선어학회 사정 위원회는 일제 감시 속에 1933년 1월 충남 아산 온정리에서, 그해 8월 서울 우이동 봉황각에서 열렸다. 그리고 3년 뒤 7월 인천 제1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교)에서 열렸다. 마지막으로 열린 인천 회의의 결과가 말모이의 완결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의 탄압이 한창이던 시기 사전 편찬은 곧 '독립운동'이었다. 인천지역 3·1 운동의 불씨가 된 인천공립보통학교에서 또 다른 독립운동인 조선어학회 위원회가 열렸고, 영화 '말모이'가 인천의 옛 일본 공장 도시바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고 하면 '소 대가리에 말 궁둥이 갖다 붙이는' 꼴일까.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