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글쓰기] 20여년간 쓴 작품만 수백 편 '주경야시' 심정임 할머니
[보통사람의 글쓰기] 20여년간 쓴 작품만 수백 편 '주경야시' 심정임 할머니
  • 인천일보
  • 승인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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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새는 줄 모르고 생각나는 글귀 적었네요"
▲ 심정임 할머니가 시를 낭독하고 있다.

▲ 심정임 할머니가 2011년 등단 당시 수상 한 메달.

▲ 심정임 할머니의 노트.

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의 꿈 접어
'문예 아카데미' 다니며 수상 기쁨
굴곡진 가정사 겪으며 5년여 칩거
다시 활력 찾으려 펜 잡고 등단도


백발이 성성해진 머리, 얼굴에 묻어 난 세월, 모진 풍파 속을 거닐다 느지막이 잡은 연필로 꾹꾹 써 내려간 진심. 낮에는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며느리, 때론 농사꾼으로 불리지만 밤이 찾아오면 그는 감성 충만한 시인(詩人)으로 돌변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젊은 청춘들 못지않다. '시인 할매' 심정임 할머니의 주경야시(詩) 인생 스토리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춘분이 지나면
나는 정형외과 의사가 된다

그가 눈을 감으며 잠시 마취에 들자
나는 그의 잃어버린 세월을 도려내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그는 오순도순 자식 키우며
기쁨을 보내올 터

나는 이제 아름다움의 언어로
세상의 환부를 치유하는 정형외과 의사다
나의 시가 감자 눈처럼 도려져
세상에 나아가 싹을 티울 때
나는 백색 가운을 입은
의사로 추앙받으리

인생의 춘분이 훨씬 지난 나는
생의 정형외과 의사가 되련다

-심정임 詩 '감자를 심으며' 中에서

#주경야시(詩)
올해로 여든의 나이가 된 심정임 할머니는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쓴다. 반나절 밭을 일군 뒤, 문득 생각나는 구절을 기억해 뒀다 노트로 옮겨 적었다. 20년 넘게 써 온 작품만 해도 수백 편에 이른다. 심정임 할머니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지금의 김포시 평생학습센터가 들어서기 시작한 때부터다. 시민대학 격인 당시 센터에 글을 쓰기 위해 족히 십리는 떨어진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센터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지요.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이 되면 문예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글을 써 왔습니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기 전까지 생각나는 글귀들을 공책에 옮겨 적었습니다. 어서 불 끄고 자라며 핀잔을 주던 남편의 목소리가 생생하네요."

김포에서 나고 자란 심 할머니는 유년시절, 유독 학구열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졸업 후 6·25 전쟁이 나면서 더 이상 학업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남동생의 교과서를 어깨너머로 보며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학교를 보내달라고 떼를 썼어요. 글을 어느 정도 쓸 줄 아니 시집이나 가라 하셨지요. 손이 귀하던 집에서 아들은 대학 공부까지 마쳤는데 나는 초등학교밖에 졸업을 못해서 섭섭하고 아쉬웠어요."

다소 늦은 나이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센터는 못다 한 심 할머니의 꿈이었다. 4년 남짓 아카데미를 다니며 시를 써 온 심 할머니의 글은 우수한 표현력으로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수상을 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시어머니와 함께 글을 쓰러 다녔는데 글을 써서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상을 받은 적도 있고, 그때 팀장이 글이 너무 좋다며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글을 배워보라고도 했었지요."

글쓰기의 즐거움도 잠시, 심 할머니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IMF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아카데미에는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날로 하던 농사일도 접고 보수가 높은 수도꼭지 생산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때, 평소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의 병환이 짙어지면서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치매가 심해지셨고 앓고 있던 지병이 깊어져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게 됐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야 했고 돌보기 위해서는 공장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머지않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서울에 갔던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효자 아들로 소문난 남편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부랴부랴 병원에 갔을 때 남편의 상태는 심각했어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여기 왔냐며 나무라던 남편이었지요."

남편을 떠나보낸 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날로 깊어졌다. 병수발을 들면서도 호된 시집살이를 하던 지난날이 떠올라 원망만 커져갔다.

"남편 무덤 가서 맨날 하는 얘기가 '당신 어머니 데려가라' 였어요. 어찌나 힘들던지…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사별 후 열두 달을 괴롭히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만 없으면 세상 후련할 줄 알았는데 벌을 받는 건지 유일한 말벗이던 어머니가 없으니 슬프고 그리웠습니다."


꿈에도 생각 못한
하늘이 폭우로 무너져
순식간에 이재민을 만들고
앞길이 구만리인 젊은 대학생들
피지 못한 체 참살을 해버렸구나

가엾구나
천리길 마다않고 그대들 조문하고 싶지만
슬픔만 가슴에 앉(안)고
펜을 들고 해(애)도 하누나

짧은 인생 너무 서러워
손 모으고 그대들 명복을 비나니
하늘에서 다시 새 문패 달고
이루지 못한 꿈 이루어
백합꽃 같은 향기 널리 휘날리기를
간절히 비누나

-심정임 詩 '애도' 中에서

#시(詩)로 전하는 조문
5년여간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내오던 심 할머니는 더 이상 이대로 세월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연필을 잡기로 결심하고 아카데미를 찾았다.

어느덧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홀로 독거노인이 된 심 할머니에게 다시 시작한 글쓰기는 삶에 활력소이자 위안이 됐다.

이후 아카데미를 통해 해마다 시화전을 열고 백일장도 참가하며 제2막 인생을 펼쳐갔다.

급기야 2011년 스토리문학에 공모한 '감자를 심으며'가 신인 작품상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됐다.

등단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순진 교수는 "짧은 배움에서 이처럼 완성도 높은 시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심 할머니의 글을 평가했다.

"등단했던 시는 '감자를 심으며'라는 시였어요. 감자 농사를 지으며 마치 정형외과 의사가 된 듯 한 생각에 쓴 시였는데 김 교수님이 글이 좋다며 칭찬해 주셨지요."

심 할머니는 주로 밭일을 하다 떠오르는 심상을 시로 옮겨 적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작품으로 완성해갔다. 특히 작품 가운데 '애도'와 '안산시민'은 인하대생 춘천 산사태 참사나 세월호 참사와 같이 뉴스로 접한 사건사고에 희생자를 추모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쓴 그의 대표작이다.

"뉴스로 인하대 학생들이 매몰됐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고 슬펐는지 몰라요. 꽃다운 청춘들이 그런 안타까운 일을 당한 것을 보고 조문을 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애도라는 시입니다."

심정임 할머니, 아니 이제 심정임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그가 김포 문화대학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시 쓰기는 참 즐겁습니다. 써놓은 시를 읽고 있으면 그때의 심정들이 떠올라 재밌습니다. 겨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보고 안부도 묻고 싶네요."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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