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수년 전 대학에 다닐 때 미국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 시절은 정치적으로 아주 캄캄한 시기였고, 경제도 매우 힘들었다. 이른바 유신을 통해 권력을 영원히 쥐고자 했던 당시의 통치자는 그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해 아주 작은 이의만을 제기해도 철권을 퍼부었다. 경제는 그간의 급속한 성장에서 주춤하고 있었는데,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석유파동이니 세계경제의 불황이니 하는 악재가 겹쳐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터져 나왔던 긴급조치라는 것이 국민들을 옴짝달짝 못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 미국이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였던 까닭은 `미국은 과연 이런 정부를 지지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우리가 참으로 단순하고 순박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상당 수의 학생운동 그룹은 미국의 한국 민주화에 대한 `좋은 역할""에 대해 계속해서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들어 이 땅에서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시절에도 미국은 우리의 문제를 푸는데 매우 중요한 관건이었다.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여정에서 미국을 어떤 자리에 놓을 것인가, 또는 미국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것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한국을 변혁시키는데 매우 중요했던 테제였던 셈이다. 돌파할 것인가, 우회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 북한은 또 무엇인가. 피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웠다. 실천과 인식의 차이가 겹치면서 이를 주제로 한 논쟁과 노선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이 大國을 반대하는 사건이 몇 차례 터지면서 우리는 점차 그 본질과 실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미국은 이제 우리에게 더 큰 주제로 성큼 다가왔다. 아니 우리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현존사회주의 몰락이후 세상이 온통 미국 판이 되면서부터는 세상일이란 것이 `미국 것과 미국 아닌 것""으로 구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이제 우린 아주 심각하게 다시 미국을 질문하게 되었다. 미국은 한반도의 무엇인가? 미국은 이 시대 인류에게 과연 무엇인가? 세계를 쥐락펴락 하더니 그것이 이젠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상황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비교적 외교적 수사에 한정되었던 미국의 역할이 이제 한반도의 운명까지 쥔 대국으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한 국가를 절단내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증거를 찾았다며(우리가 보기엔 찾아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다른 자리에서 슬쩍 고백한 것에 불과하지만) 선전포고의 구실을 제시하고 있는 나라, 해가 바뀌자 이젠 대상을 바꿔 다시 전장을 넓히려는 나라, 그런데도 국민의 다수가 이를 지지하고 있는 나라. 미국은 이처럼 다가갈수록 이해하기 힘든 나라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에게 미국은 더 이상 아름다운(美) 나라가 아니라 한반도를 혼미(迷)하게 하고 세상을 미(迷)혹케 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새해 우리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