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세월에 잊혀진 감성, 렌즈로 담는 법 알려드리죠

 

▲ 박동욱 장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삽시간에 지나간 세월, 일생을 몸 바쳐 일한 직장. 정년퇴임 후 맞이한 노년기는 이제 막 예순 나이에 접어든 그들에게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젊은 날, 나의 삶을 뒤로하고 오직 내 가족들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이들의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하다. 뒤늦게나마 못다 한 꿈을 꾸려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어 주자 그들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생 3모작의 시작을 돕는 사진사'를 안양에서 찾았다. 아홉 번째 발견 박동욱 장인을 소개한다.

#인생 3모작의 시작 돕기

100세 시대 살아가는 요즘, 조금은 이른 나이에 맞이한 퇴임은 두렵기만 하다. 덜컥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겁이 나지만 그렇다고 남은 40여년의 인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양 지역에는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으로 안양문화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다양한 문화 활동과 지역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공간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처음으로 배워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어려운 발걸음을 뗀다.

그 가운데 '사진'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취미를 시작하기에 가장 많이 택하는 장르다. 박동욱 장인은 사진예술로써 이들의 꿈을 돕기 위해 매주 이곳 안양문화원을 찾아 그들을 만나오고 있다.

"대개 은퇴 후 사진을 배우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처음에는 손자나 지인들의 사진을 찍어줄 요량으로 혹은 경치 좋은 곳에 출사를 떠나겠다는 로망으로 사진을 선택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의 사진이 단순히 취미생활에 그치기보다 지역 사회에 일원으로 그들의 사진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남다른 방식으로 사진 수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박 장인의 '사진'은 그저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한 취미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이 지역에 역군으로 그들이 다시 한번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라 정의했다.
그런 뜻에서 출발한 것이 '아름다운 안양천'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실망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멋진 풍경이 드리운 곳에 나가 화려한 사진 촬영을 하는 줄 알고 왔다가 우리 지역에 너무 익숙한 안양천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하니 적잖게 실망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지역을 잘 아는 주민들이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곳을 사진으로 소개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없을 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었죠."

'아름다운 안양천'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2년 동안 안양천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숨겨진 곳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제가 처음 안양에 왔을 때 안양천의 풍광이 참 인상적이다고 생각했었죠. 이것을 계기로 시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공간을 넘어 풀, 나무, 바위 등 이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조화롭게 자리해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저의 개인 작업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기도 했고 '이런 곳에 이런 것도 있었어?'라며 쉽게 지나쳐온 것들을 발견하며 기쁨을 알아가게 하겠다는 취지로 수강생들과 함께 진행한 작업이었죠. 2년여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는 두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호평받았고 무엇보다 수강생들이 사진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폐허 속에서 찾은 '꽃'

박 장인이 처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찍으면 찍는 대로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사진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방송국 어시스던트, 개인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상업 사진 직군에서 꾸준히 일해왔다. 현재는 박 장인조차 흑백사진을 심도 있게 배우려 안양문화원을 찾았다가 강사직을 권유받고 사진을 가르쳐 오고 있다.

"지금은 사진 수업뿐만 아니라 전시를 준비하는 분들의 도록 제작에 참여하거나 개인 순수사진 작업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재개발 지역이나 소외계층 삶을 대변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덕천마을 일대의 재개발 과정을 담은 사진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그는 개인 작업을 할 때 제자들과 함께 나서길 좋아했다. 덕천마을 재개발 작업도 그러했다. 수년 전 급변하기 시작한 안양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공간들을 사진으로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뜻을 같이한 제자들과 종종 출사에 나섰다.

"꽃은 아름답죠. 사진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폐허에서 찾아 낸 꽃은 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폐허 속에서 꽃을 찾아낸다면 길가에 심어진 꽃은 별거 아닐 거란 생각이 들 겁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덕천마을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고요. 작업에 함께 나섰던 제자는 작업을 하는 동안 덕천마을 사진가로 알려지면서 개인전과 사진집을 출간하게 됐죠. 이처럼 제자들이 뜻을 같이해주고 저보다 더 성장했을 때 무엇보다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 박동욱 장인은 안양천 프로젝트에 이어 오랜 시간 안양 지역의 명소로 불리는 안양예술공원 곳곳에 숨겨진 비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한 작업을 수강생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기계적인 매커니즘은 시간이 지나면 깨우칠 수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이미지를 보는 눈과 사진의 본질을 깨우치는 과정은 쉽지 않고 한계에 부딪치게 되죠. 저는 저를 찾은 노년의 수강생들에게 감성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라는 부분이 무뎌져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어려워지죠. 이들에게 찾아온 남은 인생을 더는 외롭지 않도록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진이 아닌 감성을 교육하고 싶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