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1919년, 100년 전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겨울은 암담했다. 가는 곳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그런가하면 전근대적인 조선인의 사고방식이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망국의 설움을 걱정하던 시대였다.

아내의 위급을 알린 전보를 들고 고향을 향한 동경 유학생의 귀향길은 일본 순사의 미행과 소지품 검사가 뒤따른 조선인으로서의 격리였다. 일본어를 몰라 구타당하기 싫어 차라리 상투를 자르지 않고 천대를 선택한 조선인도 있었다. 서툰 일본말로 일본인 척 하는 남자, 삭풍이 몰아치는 기차역 차장실에 결박을 당한 채 무릎을 꿇은 아이 업은 조선 여인, 그 옆 난롯가에서 잡담을 나누는 일본 순사 등 억압과 절망의 시대였다. / 술에 취해 삶에 끌려 다니는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은 '무덤'이었다. 유방암에 걸린 아내의 죽음은 서양 의학을 불신한 이유였다. "총독부 병원에 가서 얼른 파종을 시켰더면 좋았을 일"이다. 배고파 죽을지언정 죽은 뒤 묻힐 곳을 염려하는 전근대적인 악습을 비난하고, 혼란스러운 무질서의 조선인들을 비판했던 주인공 이일화는 5일장의 관습을 거부하고 3일 만에 아내를 공동묘지에 안장한다. / 1918년 겨울을 배경으로 일본 유학생 이일화가 아내의 병마 소식을 받고 동경에서 고베를 거쳐 시모노세키에서 관부(하관-부산)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 김천, 경성에 도착하면서 비친 조선의 현실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묘사됐다.
횡보(橫步) 염상섭이 20대 중반에 쓴 중편 <만세전>(萬歲前, 1922)은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의 겨울이었다"로 시작된다. 지식인의 눈에 비친 3·1만세운동 직전의 일제강점기 조선의 암담한 현실이 소설 속에 숨김없이 관찰돼 있다.
열차는 근대 산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하노이로 가기 위해 중국 대륙을 관통해 베트남 랑선성 동당까지 4000㎞ 거리를 전용열차로 이동했다. 무려 65시간이 걸린 대장정이다. 삼일절을 베트남 주석궁에서 맞은 김 위원장의 경제제재 해제를 바라는 속뜻에 삶에 찌든 북한의 인민이 있었을까.
이날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는 '자유조선'(FREE JOSEON)으로 이름을 바꾼 '천리마민방위'가 "자유 조선 임시정부를 건립한다"고 선언했다. 100년 전 3·1만세운동이 불길처럼 솟았던 탑골공원.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며 나선 정부 수립의 결기가 민족통일의 성과로 나타날 미래는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