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폭압에 치열하게 맞선 선조들 모습 눈앞에
▲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탑.

 

▲ 안성 3.1운동 기념탑.

 

▲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 내용을 고발한 정한경의 '한국의 사정'이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에 전시돼있다.

 

▲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1982년 유해 발굴 당시 발견된 유품들.

 

▲ 안성 3.1운동 기념관 밖으로 광복사 내부에는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패가 봉안돼있다.

 

▲ 안성 3.1운동 기념관에 전시된 수형기록 카드. 양성면과 삼죽면에 살았던 629명의 신상, 죄명 및 형량이 적혀있다.


"내가 왜 죄인이냐. 내 나라 내 땅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이 왜 죄가 되냐. 죄가 있다면 불법으로 남의 나라를 점령한 너희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그 순간까지 죽는 한이 있어도 만세를 부를 것이오."

열일곱, 유관순 열사가 외친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올해는 3·1운동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100년 전 경기도에 울려 퍼진 만세운동과 자주독립을 외쳤던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쫓았다.


#순국선'혈(血)',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서울 종로에서 발발한 3·1운동은 곧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그 가운데 화성 지역민들은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민족의 광복과 자주, 독립을 선언하고 격렬한 무력항쟁으로 항일 의지를 표출했다.

1919년 3월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함성은 화성 지역에도 울려 퍼졌다. 일제는 군대를 동원한 폭력진압으로 대응했다. 이에 격분한 지역민들은 당시 통치기구였던 장안·우정면 사무소를 파괴하고 사강·화수 주재소의 일본인 순사 2명을 처단하는 등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 강력히 저항했다. 전국의 면사무소 19곳, 경찰관 주재소 16곳이 완전히 파괴됐고 그중 화성지역에서만 면사무소 2곳, 경찰관 주재소 1곳을 부쉈다.

독립운동이 거세지자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독립운동 주모자를 찾아 박멸하고 그 소굴을 뒤엎을 것을 결심했다. 1919년 4월15일 학살의 주범,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보병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이동,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도록 한 뒤 불을 질러 학살하고 마구잡이식 체포와 구금, 갖은 고문을 자행했다. 화성 전역에 민족들을 무참히 학살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의 유적들은 고스란히 이곳 화성 '제암리 3·1운동 기념관'에 남아있다.

2001년 제암리·고주리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3·1운동 기념관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마련돼 상설 운영되고 있다. 화성 지역의 3·1운동 역사를 안내하고 자주독립을 외쳤던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화성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는 송산면 사강에 홍면옥을 필두로 홍효선, 이규선 등이며 이들은 사강 장터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향남면 발안에서는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김덕용, 강태성 등이 10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우정면, 장안면에서는 수촌리의 백낙열, 석포리의 차병한, 차병혁 주곡리의 차희식, 장제덕, 장소진 등이 주도해 2000여명의 연합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에는 을사늑약부터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까지 독립운동 내용을 담은 '3·1운동비사'와 일제의 고문과 탄압, 가혹한 식민통치 내용을 다룬 '한국의 사정' 등이 전시돼 있다. '한국의 사정'의 저자인 정한경은 1910년 미국으로 망명해 이승만, 안창호와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시장에는 각종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저술서들을 포함해 1919년과 1920년, 화성지역 만세시위에서 체포된 70여명의 재판기록이 담긴 판결문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 한편으로 마련된 '4월의 어느 날'에서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을 재구성한 2분50초짜리 영상을 통해 당시 사건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에서 놓치지 않고 둘러봐야 할 것 중 하나는 1982년 학살 지역민 유해 발굴을 통해 거둬진 유품들이다.

제암리 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불탄 유해들은 제암리에서 약 4㎞ 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봉분도 없이 매장됐다. 그로부터 약 63년이 지난 1982년 9월21일부터 유해발굴 조사를 시작해 제암리 학살사건의 목격자인 최응식의 유해 등 관련 유품들이 발견됐다.

기념관 주변으로 세워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Schofield, F.W.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 박사의 동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명 석호필(石虎弼)로 불린 영국계 캐나다인 선교사 스코필드는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내외에 알린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파고다 공원, 덕수궁, 종로 등지에 사진을 찍어 서방 세계로 보냈다. 제암리 학살이 일어나자 스코필드 박사는 수원에서 화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참혹한 학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수원에서의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미국으로 보내 여론화시켰다. 1920년 일제에 의해 캐나다로 돌아갔으며 해방 후인 1958년 정부 초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사회봉사 등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다 81세 나이로 영면했다. 스코필드는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외국인 최초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위치: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문의:031-369-1663
-월요일 휴무, 공휴일 겹칠시 다음날 휴관, 명절 당일, 신정 휴관
-매일 10:00~18:00, 입장마감 17:00

#전국 3대 항쟁지, '안성 3·1운동기념관'
전국적으로 발발한 독립운동 중에서도 안성지역은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과 함께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며 그중 가장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탓에 이 지역에서 순국 및 옥고를 치른 민중들의 수는 무려 127명에 달한다. 이는 희생자 규모에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안성에서 일어난 최초의 3·1운동은 1919년 3월11일이다. 양성공립보통학교 조회시간에 양성면 덕봉리 출신으로 보성전문학교를 다녔던 남진우와 동리 출신의 선린상업학교를 다니던 고원근의 주도로 이뤄졌다. 안성 장터의 상인들과 여성들도 의연한 결의로 군중들과 함께 군청과 경찰서 면사무소 등 읍내 일대를 돌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 3000여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진을 이어갔다. 4월1일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주민 1000여명이 횃불을 들고 만세고개를 넘어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양성면에서도 1000여명의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둘러싸고 만세시위를 전개해 나갔다. 원곡면 주민들과 합세한 양성면 주민들은 양성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우편소 등을 부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짧은 기간 동안 원곡, 양성, 죽산 등 안성 전 지역에서 6000~1만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3·1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일제는 주동자와 참여자들의 색출 및 검거 과정에서 살인, 방화, 고문, 구타 등의 만행을 저질러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안성의 3·1운동 참여자에게는 최소 6개월에서 최고 12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으며 원곡 양성의 경우 127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다 인원이 재판에 회부됐다. 거센 시위가 펼쳐진 만큼 일제 식민지 통치에 대한 부정을 명확히 드러낸 이 사건은 전국 3대 실력항쟁으로 인식되게 됐다.

안성 3·1운동 기념관에는 격렬했던 당시 상황들이 재현돼 있다. 전시실 내부에는 기획전시실을 포함해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2일간의 해방 그 후 ▲3월1일, 독립선언 ▲2일간의 해방 ▲오늘, 목놓아 통곡하라 등 6개실을 마련해 각종 역사적 근거 자료들을 수집·전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원곡·양성에서 만세운동 당시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던 이규철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읽었던 성서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동안 형을 선고받았던 범죄자들을 기록한 '범죄인 명부'를 전시하고 있다. 양성면과 삼죽면에 거주한 629명의 주소, 출생지, 본적, 본명, 신분, 직업, 판결일, 죄명 및 형량이 등이 적혀있다. 이 시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해 일제로부터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笞刑)을 받은 독립운동가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안성 3·1운동 지역도나 경기도 수원·안성 3·1운동 피해 일람표를 전시해 역사적 근거자료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안성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이 담긴 수형 카드를 이곳 안성 3·1운동 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위치:경기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문의:031-678-2475
-월요일 휴무, 1월1일, 설날, 추석 휴관
-매일 09:00~18:00, 입장마감 17:00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