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 인천에도 지역을 위한 전자상품권 제도가 도입됐다. 시민들이 '인천 이음'으로 불리는 충전식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인천 내 가맹점에서 3~7% 할인된 금액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다.
가맹점의 전자상품권 수수료는 기존 신용카드 수수료 비율 0.8~1.3%보다 적은 0.5~1%만 적용하는 정책이다. 인천 지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화폐, 즉 '지역화폐'다. 지역 시민 소득의 약 60%가 서울로 유출되어 지역경제의 동력을 상실해온 인천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지역화폐라는 정책 수단은 시민의 소득을 지역 내 소비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적실한 정책 대응이다.
이렇듯 인천시를 비롯한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지역화폐를 주로 지역상권 활성화나 지역소득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경제정책용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지역화폐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지역화폐를 매개로 해서 더 나은 도시를, 더 행복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외국의 여러 실천적 실험들을 보면 지역화폐가 도시의 공동체(Community)들을 복원시켜내고, 그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나아가 여러 다른 공동체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켜내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지역화폐의 이른바 '언어적이고 또 윤리적인' 목적을 더 중시한다. 여기서의 '공동체'라고 하는 개념은 시, 구, 동과 같은 행정적으로 구분된 여러 물리 공간적 차원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가치나 관심, 예컨대 노동, 소비, 복지, 생태, 페미니즘과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이념적' 차원의 커뮤니티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공동체에는 물리적으로 동일한 지역의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같은 문제의식과 이념을 공유하는 '운동적' 공간 즉 인터넷 상의 포럼, 메일링 리스트, 회의를 위한 단톡방, NGO와 같은 다양한 운동조직도 포함된다.

이와 같은 공동체가 그 독자적인 활동, 문제의식 관련된 메시지, 그리고 그 고유의 이념을 널리 발신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자율적으로 도입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 공동체 내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키는 등 그들만의 경제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
또 그들만이 지향하는 여러 이념적인 가치들을 지역화폐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복수의 공동체 또는 운동조직들의 각기 다른 이념적 가치가 서로 융합될 수 있거나 또는 연대해야 한다면, 각기 다른 이념적 가치 별로 사용되어 오던 지역화폐 역시 그 운영상의 연대적 통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지역화폐가 여러 공동체들 간의 언어 즉 소통과 연대의 매개로 활용되어지면 지역화폐가 통용되는 네트워크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또 지역화폐를 통해 조정 가능한 경제적 공간의 범위 역시 더욱 넓힐 수 있게 된다. 결국 법정화폐가 아닌 지역화폐를 중심으로 상품 및 서비스가 거래되는 대안적 경제사회의 폭과 가능성을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지역화폐는 결국 '화폐와 언어 사이에 위치하는', 열린 공동체와 그 공동체 내외의 소통을 활성화해 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이다. 또 다양한 공동체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범용형 플랫폼인 것이다. IT기술은 지역화폐의 이와 같은 활용을 용이하게 해주는 기술적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화폐적' 측면과 '언어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며 '경제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을 동시에 갖게 된다. 이런 지역화폐의 양면성은, 기존의 '시장(Market)'이나 '국가(Government)'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공(commons)'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걸 경제적 가치로 일원화해서 평가하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있어 그저 수단으로 작용하게 되는 '시장'을 극복하면서, 나아가 '국가'에 의한 위에서부터의 규제, 정책, 그리고 이익유도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자신의 다양한 가치와 목적을 창조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는 자율적이고도 협동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역화폐가 꿈꾸는 미래다. 그것은 도시의 커먼즈를 파괴한 화폐 그 자체를 다시 커먼즈로 돌려놓음으로써 다양하고 개성적인 커먼즈를 재생시켜내는 것이다.
모처럼의 지역화폐 붐이 불고 있는 요즘, 그 이해의 업그레이드와 그 실천의 진보적 전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