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나자
갯벌엔 온통 살아 있는 것들의
아우성이다.
싸우고, 다투고, 빼앗고, 뺏기고,
짝짓고, 버리고
게, 조개, 망둥어, 낙지, 소라들의
한세상이다.
물이 들자
온통 망망한 바다.
한순간 모든 것들을 지워 버린다.
대낮의 형상들을 어둠이 지워 버리듯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아득한 곳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아득한 곳으로 파도가 밀려가는,
삶이란
갯벌 위의 한생,
오늘인 어제를 또 미래라 믿지만
물이 나자
다시 한세상이 시작되고
물이 들자 다시
한세상이 끝나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서 물이 들면 바다가 되었다가 물이 나면 육지가 되는 곳. 바다인 듯 육지인 듯 알 수 없는 갯벌은 온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싸우고, 다투고, 빼앗고, 뺏기고, 짝짓고, 버리는' 치열함으로 가득 차 있다. 갯벌은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루한 곳이다. 갯벌 위에서 펼쳐지는 생(生)의 아우성을, "삶이란 갯벌 위의 한생"이라고 시인은 우리의 '삶'에 비유한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비루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보다 깊고 근원적인 데에 머문다.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갯벌'이 아니라 그것을 생동하게 하는 '물'이다.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들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물'의 속성을 시인은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갯벌은 "물이 들면" 아득한 어둠으로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가장 깊은 곳이 된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다. '물'은 서로 싸우고 다투고 빼앗고 뺏기는 비루한 삶의 아우성을 끝냄과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한다. 노자는 "제일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기(水善利萬物而不爭) 때문이다. 삶이 메마르고 팍팍한가. "물이 들"면 팍팍한 갯벌도 아득한 바다가 된다. 다투지 말자. 다시 봄이다.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