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감시대상 '인천 인물' 15人
사진제공=인천문화재단 역사문화센터 /그래픽=전민지 기자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양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일경의 총과 칼에도 꿈쩍하지 않고 오직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며 인천 곳곳을 누볐다.

한 세기전 인천 시내는 일제의 야욕과 수탈의 늪에 빠진 상태. 그럼에도 여관에서 일하던 15살 소년 임갑득과 잡화상에 의탁하던 18살 김삼수는 상가철시를 부르짖으며 삐라를 뿌렸고, 김명진은 창영초등학교(인천공립보통학교)의 전화선을 끊어 일제에 저항했다.

심혁성은 황어장터에서 조국 광복을 처음으로 외쳤고, 용유도에서는 문무현과 조수동, 조종서 등이 혈성단을 조직했다. 강화는 2만명이 넘는 군민이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돼 있고 이중 유봉진, 유학용, 이안득, 염성오 등이 기억된다.

인천문화재단 역사문화센터는 28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현 인천(경기도 인천·부천·강화)과 관련된 인물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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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기 센터장에 따르면 인천 관련 인물은 약 70명이고, 3·1만세운동 관련자는 15명이다. 또 70명 중에는 일제의 상시 시찰을 받거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한 애국지사도 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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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기억하려 합니다 … "독립" 외친 중학생까지도 15살 사춘기 임갑득이 수의를 입고 빛바랜 사진 속에 갇혀 있다. 까까머리를 한 앳된 얼굴, 가슴팍에는 수형번호 2995가 찍혀 있고 이름표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중학생뻘 임갑득은 왜 수의를 입고 거친표정을 짓고 있을까.1904년 8월3일생 임갑득은 160㎝ 남짓한 키 5척2촌0분으로 집은 경기도 인천부 우각55이다. 일제가 만든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적힌 임갑득의 죄명은 '보안법 위반',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임갑득은 3·1만세 운동 때 조선인들에게 가게 문을 닫고 만세운동 참여를 촉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