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바야흐로 봄이다. 봄맞이 체감은 저마다 다르지만, 기상학은 3~5월을 봄이라 정의한다. 물론 제주의 봄은 2월초 왔고, 북녘 개마고원은 한 달 가량 기다려야 봄을 맞을 것이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은 지난 겨울은 아쉬웠다. 몇 차례 내린 눈은 땅에 이르기 전 겨울비가 됐다. 겨울비는 '들국화' 시절 전인권과, '시나위' 김종서의 동명 노랫말만큼이나 음울했다.
겨울비 내리지 않는 날, 도시에는 미세먼지가 들어찼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표현대로 '밤사이에 진주한 적군'처럼 도시를 점령했다. 도시를 둘러싼 산들도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했다.' 무진의 안개야 해로움이 없겠지만, 도시의 미세먼지는 숨통을 괴롭히니 '밤새 진주한 적군'이 맞다싶다.
추위가 기승부리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 기상청은 한파 일수(영하 12도 이하)가 단 하루라 했다. 추위에 맥못춰 맹추위 닥치면 두문불출, 겨울잠이라도 자고픈 헛된 꿈에 사로잡혔다. 하여 '따뜻한 겨울'이란 역설이 싫지 않지만, 겪어보니 뒤숭숭하다.
해마다 한겨울에 찾아들던 것들의 실종에 헛헛하고, 실체 헤아리기 어려운 '온난화 위기' 징후는 혼란스럽다. 지리산 개구리가 열흘 빨리 알을 낳았다는 소식과 1월 평균기온이 10년 전보다 2.78℃ 높아졌다는 발표는, 철모르고 만개한 베란다 화분의 꽃들로 체감된다. 추위마저 견뎌내야 꽃피우는 게 섭리일터, 흐트러진 질서 앞에 사람이나 자연 모두 갈피잡기 어렵다.
그나마 겨울 끄트머리에서 조우할 수 있는 게 남아있긴 하다. '꾸어서라도 온다'는 꽃샘추위다. 3~4월 쯤 들이닥쳐 오는 봄에 어깃장을 놓는데, 명성 자자할지언정 오는 봄을 어쩌지 못한다. 계절의 변곡점에 꽃샘추위를 끼어 넣은 대자연의 이치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저 우리네 살림살이에 견줘 구미에 맞게 풀어댈 뿐이다. 누군가는 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자연의 통과의례로, 누군가는 시련 끝에 좋은날 온다는 교훈으로 접수한다.
어찌됐든 오는 봄, 꽃샘추위마저 만날 수 없다면 아쉬울 듯하다. 겨울답지 않은 지난 겨울의 지지부진을 꽃샘추위가 만회해줘야 오는 봄이 좀 더 빛날 듯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