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 이덕무 5년간의 메모
▲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 민음사, 268쪽, 1만5000원


"이덕무는 내 뼈에 새겨진 이름이 되었다.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고 또 따뜻해진다."(옮긴이 정민)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로 알려진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나던 젊은 5년간의 기록들이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절박한 가난 속에서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며 바른 정신을 지니고 살고자 날마다 하루하루의 다짐을 적고 또 적었다.

메모광이던 그는 생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통째로 베꼈다. 늘 빈 공책을 놓아두고, 좋은 글귀와 만나면 그때마다 옮겨 적었다. 스쳐지나가는 단상도 붙들어 두었다. 이 과정에서 건져 올린 짤막짤막한 말씀의 언어들이 문집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 '무인편(戊寅篇)'은 이덕무가 열여덟 살 때 쓴, 자기 다짐을 담은 짧은 글 모음으로 모두 서른여덟 단락이다. 처음 썼던 글을 잃어버리고는 근 5년을 보지 못하다 문득 문서 더미 속에서 되찾은 후 이덕무는 다시 한 자 한 자 정성껏 베껴 써서 자신의 문집 속에 포함시켰다.

2부 '세정석담(歲精惜譚)'은 세월과 정신은 한번 시들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눈앞의 시간을 아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덕무는 스물세 살 때 이 글을 썼다. 세월은 쏜살처럼 흘러가고 정신은 금세 소모되고 만다. 세상에 가장 아까운 것이 세월과 정신이다.

3부 '적언찬(適言讚)'은 이덕무가 20대 초반에 쓴 글이다. 1775년경 윤광심(尹光心 1751~1817)이 펴낸 <병세집>에 수록되었으니, 스물셋 되기 전에 쓴 글이다.

4부 '매훈(妹訓)'은 열다섯이 되어 가는 두 여동생을 위해 오라비 이덕무가 스물한 살 때 쓴 훈계의 글이다. 오누이 간에 우애가 좋아서 과일 하나도 꼭 셋으로 나누어 먹고 다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열여섯 단락의 훈계의 글에서 이덕무는 화순(和順)을 특히 강조한다.

네 편의 글에서 드러나는 이덕무의 삶에 대한 자세와 통찰은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