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각자의 관점에 따라 차이를 보이겠지만 2012년의 대선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마치 야구에서 말하는 '무사 만루'의 배팅 찬스였다. 왜냐하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이은 가장 좋은 조건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일본 노무라연구소 고모모토 본부장은 "2012년 초, 한국이 부러운 일본, 조선·철강에서 경쟁력이 밀리더니 이젠 TV, 휴대전화, 자동차, D램 반도체, OLED TV까지 삼성과 LG에게 완패했다. 삼성은 2005년 이후 세계 TV시장에서 SONY를 멀찌감치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 뒤 독보적 기술로 앞서 갔다. 그러더니 일본이 포기한 55인치 OLED TV를 삼성과 LG가 2012년 초에 출시하자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일본 전자업계가 '삼성 타도'를 외치며 반도체 연합군 '엘피다(ELPIDA)'를 창군하여 결전에 임했지만, 최근 2~3년 동안에 Sanyo가 무너졌고, Sharp, Panasonic도 수 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일본 전자업계의 마지막 자존심이던 '엘피다'가 2012년 4480억엔(약 6조원)의 부채를 견디지 못해 법정 관리를 신청한 후 종언을 고하고 사라졌다. 결국 삼성전자는 일본의 모든 전자 회사가 합쳐서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엄청나게 뛰어난 회사"라고 간파했다. 그런데 그 삼성이 고전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무엇을, 어떻게'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1950년대 초까지 한국은 천수답에 의존하던 농업국가인 관계로 가뭄과 가난 그리고 보릿고개가 숙명인 나라였다. 설상가상으로 북한 남침에 의한 '전 국토의 폐허화'라는 전화(戰禍)를 입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발전해 GNP 1만달러 시대(미국은 1978년, 일본 1981년)를 1995년에 달성하였고, 국내 총생산(GDP)이 1965년에 30억1761만달러에서 2013년 약 1조3046억달러로 50년 만에 경제력이 400배 성장했다. 그 결과 2010년 세계 1등 상품이 119개에서 2012년 143개, 그리고 2014년 154개로 증가하는 등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왜 처절하게 역전되었는가.

2011년부터 일본에서는 '한국경제 배우기' 붐이 일어났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언론에서는 '한국을 배우자'라는 특집이 자주 보도됐다. 그들은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은 3만8000달러의 나라이고, 한국은 2만3000달러 국가인데 왜 배우자고 야단들인지 모르겠다"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분위기였다. 결국 2012년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인구도 적고 자원도 빈약한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특집기사로 한국의 강점 4가지를 분석했다. 일본인다운 접근에서 배워야 한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전과 파괴 공작, 그 좁은 땅과 바다에 자동차나 배가 맘 놓고 달릴 곳도 별로 없는데 자동차 산업 세계 5위와 조선산업 세계 1~7위까지 석권이라니 믿겨지지 않는다.
2012년 3월호 미니트리는 "현대·기아차에게 혼다나 미쓰비시는 이미 경쟁자가 아니다. 오직 도요타, 폭스바겐 정도가 라이벌일 뿐이다. 완성차 시장에서까지 일본이 한국에 밀린다는 점은 일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차 연비 경쟁에서는 독일(벤츠, BMW), 프랑스(푸조), 도요타(프리우스)에 비해 뒤떨어진다. 문제는 독일 등 유럽차들은 1980년대부터 디젤 엔진위주로, 일본차들은 하이브리드(내연기관+전기모터) 기술개발에 주력하면서 20년 넘게 연구를 했지만 우리나라는 1998년 디젤 엔진개발의 시작과 하이브리드 개발도 2000년 중반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게 문제다.

이같은 좋은 조건에서 2012년 12월 대선판이 열리고, 대선후보 캠프에 있는 경제통의 폴리페셔들의 주된 경제정책을 봤을 때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의 활력은 떨어질 게 뻔하고, 선진국 진입은 험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재벌의 문제점을 개선토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화풀이식의 '재벌 개혁' '재벌 해체' '재벌 총수 힘을 확 뺀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더욱이 야구에서의 '무사 만루' 상황은 득점 확률이 85.3%라는 좋은 기회이지만 실패할 확률이 14.7%나 된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둔다'고 당선자가 인사와 정책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자기 진용에서 분란을 야기하며, 상대방 야당에서 사사건건 반대를 하면 '3자 범퇴' 무득점의 불운을 맞게 된다.

경제계가 '번아웃 신드롬'에 빠진 시간이 길수록 한국호는 '아포리아' 상황으로 접근하는 꼴이 된다.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는 불길한 생각이 계속되었던 결정적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