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한 7∼8년 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다가 본 일이다. 아직 식당 등에서의 금연이 권장사항 정도일 무렵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일행 중 하나가 종이컵을 구해 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저만치서 주인 아주머니가 쫓아와 좀 엄하게 "담배 피우면 안돼요"라고 했다. 무안해진 술꾼이 "단골손님에게 너무 하네" 어쩌고 하며 구시렁거렸다. ▶때마침 주인 아주머니를 쫓아 하얀 털의 반려견이 테이블 쪽으로 뛰어왔다. 술꾼이 호기를 잡은 듯 "밥 먹는 곳에 개털이나 날리면서 무슨"이라고 반격했다. "나처럼 개털 알레르기 있는 사람은 어쩌라고"라고도 했다. 주인 아주머니도 "이렇게 이쁜 애를 왜?"라고 응수했다. 술꾼은 "이렇게 구수한 담배를 왜"라며 응수했다. 결국 그 날의 결말은 이랬다. "야 다들 나가자. 내가 다시는…" ▶지난해 말 시행된 담뱃갑 경고그림 전면 교체가 유통 경로를 거쳐 이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훨씬 강력해졌다. 이는 정부 입장이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잔인해졌다'일 것이다. 경고그림의 목적은 흡연에 대한 혐오감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들여다 보면 끔찍한 정도가 지나쳐서 이 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심성이 의심될 정도이다. ▶이번 경고그림 교체의 취지는 기존 그림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세포 사진이 추가됐다. 폐암 외에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졸중, 임산부 흡연, 성기능 장애, 치아변색 등 10종이다. 표현의 수위도 확 높였다고 한다. 암으로 뒤덮인 폐 사진 등 실제 암 환자의 병변, 적출 장기, 수술 후의 끔찍한 사진 등이 채택됐다고 한다. 그 섬뜩함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담뱃갑들이 온통 피투성이다. 젊은 여인의 얼굴 반쪽을 흉측하게 짓뭉개 놓은 그림에 영정 사진까지 곁들였다. 보건당국은 그들의 초상권이라도 사 뒀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처하는 담배 소비자들의 대응도 가지가지다. 사자마자 그림을 찢어 버리기도 한다. 편의점 근처에 찢겨진 그림들이 나뒹군다. 그림을 가려주는 담배 케이스도 인기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스티커를 붙여준다. 더 약한 그림으로 바꿔 달라는 성화에 아예 편의점이 스티커 비용을 문다는 것이다. 편의점 알바생 커뮤니티에도 '하루 종일 그런 그림을 봐야 하니 죽을 맛'이라는 하소연이다. ▶문제는 뭐든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흡연자들이 타도 대상인 듯 그 마음들을 잔인하게 짓밟는다. 흡연자도 비흡연자도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른다. 우리 보건당국의 고약한 심성을 담배 그림에서 읽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