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솟아오른다 … 안녕을 빌어주는 그녀 덕분에

 

▲ 송상소 장인이 솟대 작업을 하며 환히 웃고 있다.

 

기존 크기 줄이고 '실용성' 높여
길게는 한달까지 걸리는 수작업
'수호신' 의미 담긴만큼 선물 제격

안양시 1호 '웃음 치료사'로서
웃는 일 가득하라는 마음 담아
일종의 표식처럼 꽃무늬 각인



하늘의 메신저, '솟대'는 마을 어귀마다 놓여 우리 마을의 안녕을 돕고 액막을 쫓는 수호신이라 불렸다. 높다란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앉히면 솟대가 된다. 이 나무 새는 하늘에 닿지 못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신에게 전하는 존재였다.
웃음을 솟대에 실어 보내는 '웃음 명인'을 안양에서 찾았다. 일곱 번째 발견 송상소 장인을 소개한다.

●웃음 강사가 만드는 온고지신(溫故知新) … 웃음꽃 솟대 장인

솟대, 솔대, 소주, 화주, 표줏대, 수살대, 짐대, 진또백이, 별신대, 대장군영감님 …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천차만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만큼 각 지역 특성에 따라 형태도, 의미도 제각각이다.

솟대는 대개 나무나 돌을 주재료로 새 모양의 나뭇가지를 서로 연결하고 3m 전후, 긴 장대 끝에 매달아 마을 초입에 세워진다. 솟대에 올려진 새의 종류로는 오리나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까마귀 등이 있다. 특히 오리를 장대 위에 올리곤 했는데 오리와 같은 물새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 주거나 화마로부터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오늘날 아파트가 들어선 도시에서는 솟대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를 만들던 장인들 역시, 설자리를 잃고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솟대를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는 찰나, 송상소 장인은 솟대의 매력에 빠져 4년째 작업을 해오고 있다.

"양양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토속적인 인테리어 소품 하나를 보게 됐죠. 처음엔 이것이 솟대인 줄 까맣게 몰랐어요. 제가 보아오던 솟대의 모양과는 달랐기 때문이죠. 크기도 앙증맞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손색없는 색다른 솟대를 보고 나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공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송 장인이 솟대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술 대학 졸업 후 한국화, 수묵 산수화, 사군자, 서예 등 동양 회화 작업을 주로 해 오며 붓을 놓은 적 없던 그가 '솟대'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칼이나 드릴을 잡는 일이 더 많아졌다.

"회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캔버스나 도화지 위에서만 보이던 작품들이 솟대를 만들면서 3차원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처음에 작게나마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더니 솟대의 남다른 의미 덕분인지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솟대를 만들

 

▲ 송상소 장인의 작품으로 4개 작품명 모두 '무제'이다.
▲ 송상소 장인의 작품으로작품명 모두 '무제'이다.

고 있습니다."

송 장인이 만드는 솟대는 기존의 제작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 크기를 간소화하고 보다 실용적인 측면을 강화한 '생활 솟대'이다. 3m 장대 위에 앉힌 솟대보다 콤팩트하게 제작된 송 장인의 솟대는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솟대 본래의 취지 덕분에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송 장인이 솟대를 만들기 위해 가장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은 재료 선정이다. 그의 솟대는 표피가 단단하고 옹이나 나이테가 없는 매끄러운 질감의 '때죽나무'를 주재료로 만들어진다.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이 걸린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솟대 표면 곳곳에 새겨진 '꽃무늬'는 송 장인의 솟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표식이다. 일종에 인증마크와 같은 이 꽃무늬를 '웃음꽃'이라 부르며 한 잎 한 잎 송 장인이 손수 새겨 넣고 있다.

"웃음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죠. 제가 주로 꽃을 소재로 한 회화 작업을 하고 있고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레크리에이션 지도를 하는 웃음 치료사이기도 해 솟대를 받는 분들에게 항상 웃는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웃음꽃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안양시 1호 웃음 전도사

사실 송 장인은 작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복지회관, 노인대학, 경로당을 찾아 행복한 웃음을 전파하는 웃음치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로 11년째 해피 바이러스를 전하고 있는 그는 안양 지역 어르신들 사이에서 웬만한 방송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얻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쳐왔죠. 그러다 문득 나이가 든 저의 모습을 발견했고, 젊은 날 고작 대학에서 배운 미술 지식으로 지금의 아이들을 가르치자니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보다 새롭고 신선한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 확신이 들면서 26년간 운영해오던 미술학원을 접고 새로운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때마침 주변 지인이 웃음치료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고 사교적인 저의 성격에 적합한 일이라 생각이 들어 그 길로 웃음치료사가 됐습니다."

안양의 1호 웃음치료사로 맹활약 중인 송상소 장인에게 지역 어르신들은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경로당은 일찍이 모친을 여읜 송 장인에게 위안이 돼주고 기댈 수 있는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의왕이 고향인 송 장인은 2살 되던 해 안양으로 이사 오면서 58년을 줄곧 이곳 안양에서 지내왔다. 작업실과 자택을 두고 있는 공간 안채에는 경로당이 있는데 이 모두 송 장인의 부친이 지은 건물이다.

▲ 송상소 장인의 작품으로작품명 모두 '무제'이다.<br>
▲ 송상소 장인의 작품으로작품명 모두 '무제'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집을 지으면서 한 편에 경로당을 함께 지어 안양시에 기증하셨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항상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었죠. 지금의 웃음치료사를 하는 데 힘든 내색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예요. 또 웃음치료사라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겠어요? 힘들고 지칠 때 어르신들에게 투정을 부리면 어르신들은 항상 토닥여 주시곤 합니다. 제가 살아가는데 가장 힘이 돼 주시는 분들이 바로 이분들입니다."

송 장인에게는 다른 건 몰라도 철두철미하게 지켜온 철칙이 하나 있다.
"약속이죠.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하게 지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있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도 있지만 반면에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만 계신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지나치지 않는 선을 지킬 줄 아는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