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다가도 역사문제 등이 제기되면 한·일 간의 관계는 전혀 개선된 것이 없는 듯 감정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양 국민의 성숙으로 한·일 간의 이해와 교류는 깊이를 더해, 한국 내에 향유되고 있는 일본문화는 일상이고, 많은 이가 기꺼이 일본을 찾고 즐기는 상황이다. 과거를 잊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해 감정만을 내세우지 않고 좋은 것은 좋다 하며 객관적으로 보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정부가 쟁점화한 초계기사태는 피해국이 가해국을 지적하던 그간의 행태와는 달리 일본이 안보분야에서 피해국 행세를 하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 일제 침략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인 한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늘 사과를 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변국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하던 시대에서 국민 개개인의 요구와 주장이 존중되고 반영되는 시대에 진입하여, 과거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에도 불구하고, 묵살되어 오던 개인의 피해는 재조명돼야 한다는 시각이 싹터 있다. 위안부나 징용피해자 등의 문제도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하는 상황에 들어선 것이다.

한일조약의 청구권협정 등으로 한·일 간의 배상문제가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시대의 상황을 직시한다면 풀어야할 문제들은 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대의 국가 간 협정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피해자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한일협정은 결과론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상호 책임 회피적 행위로 귀결될 수 있다. 피해자들을 돌보지 않은 한국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지만 지금처럼 문제제기가 될 수밖에 없는 예견된 미래를 애써 외면한 일본정부의 책임도 지울 수는 없다. 정부 간 협상만으로 문제해결을 꾀하고 정작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처사는 인류의 정의에 반한다. 일본정부는 협정의 법적 정당성만을 주장하기에 앞서, 그간 보상은커녕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경청함이 가해자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청구권협정으로 할일 다했다는 태도는 일련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현책이 될 수 없다.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도 일본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전향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다. 전범기업이란 비판은 일본기업이 거스르지 못한 시대의 과오를 통감하고 새로이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기회를 제공받는 것일 수 있다. 정부의 그늘에 숨어 멍에를 짊어지고 나갈 이유는 없다. 일본인의 강점은 잘못에 대한 깨끗한 사과와 이를 토대로 하는 건강한 미래설계일 것이다.
한국인의 일반 일본인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일본의 정치가들도 그런 평범한 일본인들과 언행을 같이 하기를 기대한다. 늘 정치가들이 문제다. 그들의 잘못된 언행만 없다면 교류확대와 이해증진으로 한·일 동반성장에도 저해요인은 크게 줄 것이다. 국익을 가장한 왜곡된 정치꼼수는 애써 일본을 찾는 한·중 양 국민의 감정을 짓밟는 행위이다. 일본의 정치가나 기업이 일본에서 통용되는 보통의 상식을 발휘하는 것으로 한일관계의 응어리는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올바른 국정수행을 위해 국민들은 세금부담과 함께 각종 의무를 진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최상위의 책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국난은 국가가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탓에 기인한다. 수많은 국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반복하며 국민을 고통과 치욕 속에 몰아넣은 것이 국정 담당자, 즉 위정자들이다. 당연히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일제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국민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하고, 가해국의 잘못으로만 그 책임을 떠넘겨오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비하지 못하고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런데 통일도 이뤄내고 주변국을 극복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작금의 정치현실을 보면 다시 망국의 전철이라도 밟으려는 듯 정치권은 의미 없는 싸움으로 일관하고, 일부 국민들도 이에 현혹되어 편 갈라 정치가들을 역성드는 형국이다. 늘 역사교육을 강조하지만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 따위는 없는 것 같다. 국력 없이 원하는 한일·한중관계는 얻어낼 수 없다. 국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을 국민의 손으로 끊어내지 못한다면, 국수주의로 치닫는 주변국에 맞서 싸울 국력은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