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급기야 한일관계의 갈등이 군사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과거사와 영토문제에 국한되어 왔던 갈등의 파고가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한일관계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정면의 이치, 측면의 정, 배면의 공포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면의 이치란 우선 자기 자신이 납득하고, 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사리에 맞게 설명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측면의 정은 인간으로서의 인정과 도리를 바탕으로 관계자의 상담이나 요청에 응하거나 지원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면의 공포는 서로 합의한 약속이나 조직 차원의 방침에 반하는 경우, 또는 책무를 게을리 할 경우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해 환기시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엄중한 현실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제재조치를 내비침으로써 위기감이나 건전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세 가지는 인간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간의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일관계에서 정면의 이치란 무엇인가. 작금의 금도를 넘나드는 역사문제 등에 대해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치에 맞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화해·치유 재단 설립 허가 취소, 구축함 레이더 조사 및 초계기 근접비행 등 한일관계를 근저에서 뒤흔들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양국 정부는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선악 이분법으로 복잡한 한일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서로가 공통의 인식에 달하지는 못할지라도 문제의 본질과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다름을 확인하고 이를 인정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1965년 한일수교 협상 당시 주요 부분에 대해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처럼 적어도 각자의 입장을 유지할 수는 있어야 한다.

국내 정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의 입장만을 내세우면서 이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자국의 정당성만을 주장해서는 한일관계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측면의 정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 입장을 떠나 속내나 실질적인 이해관계, 장기적인 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양국간 관계로 묶어두지 말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안보공동체, 번영공동체, 동아시아 국제공공재의 협력적 구축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일 군사부분의 갈등은 한·일 간에 시비를 가려보고 협의할 사안이기도 하지만 한·미·일 동맹차원에서 신중히 고려할 사안이다.

적어도 나카소네나 모리, 김종필과 박태준과 같은 거물 정치인들 간의 심정적 네트워크가 양국간 외교 및 경제 관계의 막후에 자리하고 있을 때 한일관계가 삐걱거리면서도 굴러갈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가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 요즘이다. 어려운 한일관계 속에서도 인적교류의 규모가 1000만을 돌파하고,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과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가 상대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교류 확대를 통해 측면의 정을 키워나가는 데 있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복합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적절한 형태의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배면의 공포는 문제 해결의 마지막 보루로서 효과적인 보복 조치의 실행 가능성을 선택지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관계에 있어 사드배치 문제로 불거진 중국의 경제보복은 기억에 생생하다.
한일관계에서도 일본은 실제 통화스와프 연장, 관광비자 면제조치 해제,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관세 등 보복 조치를 협상카드로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대응 보복 조치의 옵션이나 과거의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과연 일본에 맞설 수 있는 적절한 국력과 옵션을 갖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유예와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맞물리면서 전후 동북아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강력한 공포의 균형에 빈틈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동맹이 이완 조짐을 보이면서 억눌려있던 한·일 간 힘의 불균형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도발이 군사행동으로 비화했을 때 한국에 승산이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 결코 한·일 양국을 떠나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일관계에서 정면의 이치와 측면의 정이 사라지고 배면의 공포만 번득일 때 남는 것은 자명하다. 공멸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21세기 복합 공생 네트워크 시대에 19세기적 부국강병론이나 독자적 핵무장론이 판을 치게 해서는 안 된다. 양국 리더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