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무 포토그래퍼

 

사진은 다른 예술과 비교해 역사가 짧다. 사진이 처음 탄생한 시기는 1839년으로 200년이 채 되지 않은 예술 분야다. 그마저도 일반인들이 사진을 직접 찍고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은 더 짧다. 그래서 사진은 처음부터 기존 예술분야에 포함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회화는 처음 사진이 등장했을 때부터 경계심을 보였다. 너무 쉽게 눈으로 본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사진에게 영향력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사진을 무시했고 가치없다고 말했다.

사진가들은 예술계의 텃새를 이기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사진예술은 발명 이후 오랫동안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일종의 방황하는 시기를 거쳤다. 마치 어린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며 사춘기를 거치듯 회화를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화를 따라하기도 하는 등 질풍노도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진예술계의 고민과 무관하게 사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부유한 일부 사람만 가질 수 있었던 자신의 초상화를 작은 크기라도 소유할 수 있게 했고,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사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으로 간주 됐고 그 덕분에 사실을 기록하는 매체로 활약할 수 있었다. 사진가들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진의 특징을 이해하게 됐고 서서히 예술에 사진의 특징이 녹아들면서 비로소 예술 분야에서도 회화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이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다. 안셀 아담스(Ansel Adams),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등은 사진의 세밀한 묘사력을 활용할 줄 아는 작가들이었다.

특히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초창기 회화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진이 가지고 있는 세밀한 묘사에 집중하면서 많은 사진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반면 회화는 점차 전통적인 형태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과 회화의 적대적인 관계는 막을 내렸다.
동시에 사진은 매체가 가지고 있는 묘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됐는데 그 선봉에 선 사람이 안셀 아담스다. 그는 빛을 기록하는 필름 그리고 이것을 옮기는 인화지의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했다. 흑백사진이 중심이었던 당시 완전한 검은색부터 완전한 흰색까지 0~10까지 총 11단계로 밝기를 나누고 인화지 안에서 이 모든 단계가 빠짐없이 부드럽게 표현될 수 있는 인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존 시스템(Zone System)이라고 이름붙였다. 그의 사진을 찾아보면 어느 하나 치우침 없는 밀도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존 시스템은 지금까지 사진예술가에게 영향력 있는 이론이다. 특히 흑백 사진을 작업하는 사람에게 존 시스템은 꼭 필요한 인화 지식으로 숙지한다면 풍성한 묘사를 사진 안에 담아낼 수 있다.
사진의 기술적인 묘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던 한편에서는 그 안에 담길 내용의 발전이 있었다. 당시 사진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강렬한 이미지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분야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스위스계 미국인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도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진가 중 한명이다. 그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미국 사회를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 큰 이슈가 됐다. 그의 사진은 사진의 묘사력을 극대화하려 했던 1900년대 초반 사진예술의 흐름과 또 달랐다. 흑과 백이 극명하게 나뉜 사진은 보는이로 하여금 내용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과감하게 구성한 화면과 극단적인 명암은 이후 사진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문에 따르면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을 존 시스템의 아버지인 안셀 아담스가 프린트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극단적인 명암을 가진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을 자신의 인화 기술을 이용해 풍성한 명암으로 표현했다. 그러자 인화지 안에는 이전의 힘이 가득했던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아닌 평범한 풍경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안셀 아담스는 사진의 힘이 묘사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모든 것을 드러낸 풍성함보다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감추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러한 것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할지라도 과감하게 다른 것을 포기하고 한 곳에 집중할 때 비로소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과연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