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 검토 … 일본 완공시기보다 11년 빨라
이상재 선생 유품 '미국공사왕복수록'서 확인 … 후손이 기증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로 근대화의 상징인 경인선은 일본이 부설권을 갖기 훨씬 이전부터 조선 정부가 미국과 이를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J. R. Morse)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이를 1897년 5월 다시 일본 측에 넘기면서 결국 1899년 9월 일본 측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 정부의 주도적 역할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13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888년 이미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했으며, 관련 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이상재 종손인 이상구(74) 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 온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미국서간'(美國書簡) 등 옛 문헌과 사진 8건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이상재 선생의 유품인 기증 유물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박물관으로 개관한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공사를 하던 중 건물과 관련된 고증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

특히,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은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로, 조선과 미국의 외교 현안을 비롯해 공사관 운영 상황과 공관원 활동상이 상세히 기록됐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 업무편람이라고 할 만한 자료다. 특히 미국 뉴욕 법관 '딸능돈' 등이 1888년 조선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등 설치를 제안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이 주목된다.

규약은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로 시작하는데, 조선과 미국 간 철도 부설 논의가 경인선이 완공된 1899년보다 10여 년 앞선 시점에도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경인선은 조선이 1896년 미국인 모스에게 부설권을 허가하고, 모스가 이듬해 5월 부설권을 넘겼다고 알려졌다"며 "미국공사왕복수록을 통해 조선이 1880년대에도 미국과 철도 부설을 논의했고, 관련 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상우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